가치외교의 길, 조공외교의 길

입력
2023.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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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 확인한 강화된 한미동맹
중국의 조공강요 외교가 새로운 도전
원칙 대응 필요한데, 야당 어깃장 문제

6월 첫 주 '신통일미래구상'의 해외 공론화를 위해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하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의 미국 방문이라 준비가 필요했다. 그동안 온라인 회의는 몇 번 있었지만 대면 회의는 간만이었다. 미국 국무부와 유엔 정무평화구축국(DPPA)을 비롯하여 전략국제연구센터(CSIS), 헤리티지(Heritage), 브루킹스(Brookings), 스팀슨센터(Stimson Center), 북한인권위원회(HRNK) 및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 등 다양한 연구소를 방문하였다. 회의 도중 화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인이 애호하는 '아메리칸 파이'를 멋지게 열창한 것이었다. 미국인들의 공감이 매우 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미동맹이 역대 어느 때보다 공고하다는 것을 절감하였다.

5박 7일간 15개의 강행군 일정을 소화하면서 워싱턴 국제정치에서 북핵 문제가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는 관심이 약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동아시아 외교의 타깃이 변했으며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보다는 베이징과 대만 문제가 핵심이었다.

지난주 국가안보전략 발표로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골조가 완성되었고 최종 화룡점정은 신통일미래구상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일 때 출범한 윤 정부는 자유와 연대를 토대로 가치외교를 주창하며 '대담한 구상', '인도 태평양 전략' 등으로 외교의 틀을 잡았다. 5년마다 갱신되는 국가안보전략이 발표됨에 따라 이제 새로운 통일 비전을 제시하는 과제만 남았다.

윤 정부의 외교 및 안보 하드웨어는 거시적인 설계가 마무리되었고 향후 남은 임기 동안 층별로 미시적인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일이 남아 있다. 외교·안보 정책 소프트웨어에서 가장 난해한 과제는 북한의 도발 억제와 중국의 조공(朝貢) 강요 외교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이다. 북한의 도발 억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워싱턴 선언에 따른 강력한 확장억제로 대처하면 위험한 불장난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조공 체제 복귀 강요는 한국 외교에 가장 큰 도전이다. 2010년 7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의에서 당시 양제츠(杨洁篪)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은 대국이고 다른 나라는 소국이다'라고 규정하였고 이후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중국 리스크의 관리는 인태전략의 가장 큰 도전과제다. 싱하이밍 대사의 무례한 발언으로 촉발된 한중 외교 갈등은 향후에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평양에서 근무하여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외교관의 돌출 행동이 아니라 가치와 조공 외교라는 프레임의 충돌이기 때문이다.

대응은 일관성과 원칙이 기본이다. 최근 조태용 안보실장이 언급한 '상호존중' '당당한 외교' '건강한 한중관계'가 원칙의 3대 키워드가 될 수 있다. 다만 항상 적은 밖에도 있지만 내부에도 있는 것이 문제다. 중국의 갈라치기 전략에 말려 야당 대표가 한중 외교 갈등 현장에서 상대편에 들러리를 서는 행태로는 중국의 조공 외교를 막기가 어렵다.

지금은 19세기 구한말 임오군란(壬午軍亂), 아관파천(俄館播遷) 등 외세를 개입시켜 주권이 우왕좌왕하던 시대가 아니다. 워싱턴에서 방문했던 대한제국 공사관은 당시 청국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개관한 조선의 몸부림이었다. 1889년부터 16년간 이 건물을 공사관으로 사용했던 대한제국 고난의 역사는 오늘날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는 한국 외교의 갈 길을 제시한다. 21세기 외교에서 19세기 마인드로 베이징(北京)에 연모(戀慕)와 알현(謁見)의 저자세로 일관한다면 한국은 영원한 소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18대 민주평통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