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과 사실혼 관계이자 경제적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부동산 개발업체 회장 A씨와 장시간 전화통화를 했다. 본보는 황보 의원과 A씨가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첫 보도(6월 2일) 전날 A씨와 처음 통화했고, 이달 8일과 9일 총 2시간 42분(1시간 24분 57초, 1시간 18분 57초) 동안 휴대폰으로 대화했다. A씨는 두 차례 통화에서 자신의 정치적 네트워크를 거침없이 언급하며 여권 내 내밀한 얘기들도 꺼냈다. A씨가 언급한 이야기 중 정치권 인사들과 관련한 주요 내용을 공개한다. 본보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통화 내용을 추가로 공개할 계획이다.
A씨는 통화 내내 자신의 정치권 인맥을 과시했다. 특히 의원 실명을 한 명씩 거론하며 친분을 강조했다. A씨는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랑 친하고 정동만, 하태경도 친하고 조경태 의원. 하여튼 이번에 부산의 초선 의원님들하고는 다 친하다”며 “강민국 의원도 (친하고), 하영제 의원도 우리 같은 집안이고”라고 말했다. 언급된 의원들은 그러나 최근 논란을 의식한 듯 “문자 몇 번 주고받은 사이” “내가 아닌 당 주류와 접촉하려 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 의원은 “황보 의원과 함께 저녁에 차 한 번 먹었고, 전화도 없는 사이”라며 대부분 A씨와 거리를 뒀다.
A씨는 5월 말 국회를 찾아 국민의힘 당 지도부와 인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리는 박성민 의원이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국민의힘 사무부총장으로,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박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황보 의원과 친분이) 깊지 않다. 동료 의원이고 내가 부울경 초선 의원 회장이다 보니 친분이 있어 보이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A씨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엔 “그 부분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당에서 조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라며 답을 피했다.
A씨가 단순히 인사한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식사 자리에 참석해 계산을 해 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박성민 의원과 술자리가 있을 때, A씨가 서울에 있으면 종종 와서 계산해 주곤 했다"고 말했다. A씨는 회사 직원 명의 신용카드를 황보 의원에게 지급했다는 의혹에 해명하며 “직원 명의 신용카드는 단둘이 있을 때 썼지, 외적으로 쓴 적은 없다”며 “(황보 의원과) 같이 간 자리에서 의원님이 계산할 때는 내 카드를 드리는데, (의원이) 가끔 깜빡하고 안 돌려준 경우는 간혹 있었다”고 밝혔다. 황보 의원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선 자신이 계산했다는 것이다.
A씨는 자신이 당 지도부와 친분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근래(5월) 국민의힘 대표와 사무총장, 사무부총장, 당대표 비서실장, 수석대변인 이런 분들을 만나 인사하고 저녁에 술도 한잔 했다”며 “(이철규 사무총장은) 그전부터 서로 얼굴은 터놓고 있는 사이였는데, 다른 자리 가시다가 또 오셔서 몇 잔 하셨다”고 말했다. 이 사무총장 측은 이에 대해 “A씨를 전혀 모르고, 만난 적이 없다. A씨에 대해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 조치를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김기현 대표 측도 “A씨를 전혀 모른다. 얼굴도 모르고 만난 적 없다“고 했다.
A씨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총선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인을 여권 핵심 인사들이 잇따라 접촉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특히 내년 총선 출마 의지를 밝힌 상황이라 공천을 기대하고 접촉했을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A씨는 여권 실세에 가까이 가기 위해 황보 의원을 활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특히 부산 지역에서 자신이 영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2020년 총선에서 황보 의원 당선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했다. A씨는 “약 6,500표 차이로 이겼는데, 과거 김무성 전 의원이나 김형오 전 의원이 치렀던 선거보다 더 큰 차이로 이긴 것”이라며 “내가 황보 의원한테 1만 표 이상 차이로 이기게 해 주겠다고 했다. 부산 30년 생활 동안 박은 거 다 거두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A씨는 지인 공천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그 분야는 내가 관여할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거 하나는 있었다”며 제9대 부산시의회 전반기 의장 사례를 들었다. 그는 “국회의원들한테 전부 전화해서 이번에는 안성민(당시 시의원)이 의장을 하는 게 맞다. 선수(4선)로도 그게 맞다고 말했다”며 “당시 서병수 시장이 미는 시의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시장님이 양보하십시오. 나는 안성민이 이번에는 꼭 (부산시의장) 시켜야겠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안성민 시의원은 합의 추대돼 현재 부산시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서병수 의원은 이에 대해 “내 지역구 출신이라 시의장 출마를 격려했을 뿐 공천에는 관여하지 않았고, A씨의 전화를 받은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통화 내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황보 의원과 자신은 피해자로, 경찰 수사 등 이번 논란의 배후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황보 의원 지역구에) 오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면, 차장검사 출신 OOO”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검사 출신을 공천하려고, 황보 의원의 결격 사유를 미리 만들어 두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A씨는 내년 총선에 국민의힘 후보로 부산 지역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서울에 자주 오는 것 같다’는 질문에 “내년에 뭘 한번 해보려면, 좀 자주 찾아봐야 안 되겠습니까”라며 “눈도장을 자주 찍어놔야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지역에 서병수 의원님이 이제 좀 오래 하셨죠. 이쪽(부산 진구)에서 15년 살면서 사업했는데, 부산 지역민들이 이제 좀 새로운 사람을 원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