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김기현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힘은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 지도부'로 요약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반복돼 온 내홍 수습이 김 대표의 당면 과제였지만, 대통령실을 향한 과도한 '코드 맞추기'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내년 총선에 앞서 집권여당 대표로서 현안 주도권 확보는 물론 사안에 따라 가감 없는 민심 전달로 대통령실을 보완하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당과 원팀으로 하모니를 이루는 '건강한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 관계'가 자리를 잡았다"고 자평했다. 내홍이 끊이지 않았던 이준석 전 대표 체제와 달리, 당정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실제 김 대표 취임 이후 정치 현안에서 대통령실과 여당 간 이견이 드러난 사례는 없었다.
이 같은 '원팀'만 강조하는 행보가 오히려 국민의힘은 물론 김 대표를 가리고 있다. 대통령실 기조에 당이 100% 맞추다 보니, 여당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 대표도 무색무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100일간 김 대표만의 정치, 김 대표만의 리더십, 김 대표만의 정책 어젠다가 없었다"며 "여당이 앞장서서 나가지도 못했고 대통령실을 향한 비판도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집권여당이 대통령실과 차별화할 여지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목소리가 너무 똑같다는 점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여권을 향한 시민사회의 비판을 대통령실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이 미흡했다"며 "예를 들어 한중관계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등에 있어 국익 보호 차원에서라도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결을 달리하며 대통령실과 여당이 보완관계로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정협의가 늘었다고 하지만 '김기현표'라고 부를 만한 정책도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정부가 한 것을 통보만 받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지 않느냐"며 "당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용산) 그늘에 당이 가려지는 건 김 대표 선출 당시 예견된 바다. 대통령실은 '전당대회 개입'이라는 비판 속에 유력 후보였던 안철수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을 '정리'하며 김 대표 당선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오히려 중도층에 소구할 수 있는 자원들을 쳐내면서 '외연 확장'을 위한 기반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대표는 '당이 대통령실에 끌려간다'는 지적엔 선을 그었다. 기자회견에서 "당이 가진 생각, 민심의 방향을 대통령실에 전달하고, 녹여낸 다음 해답을 찾아서 결론을 만들기 때문에 종속된다는 표현에 동의를 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당내에선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친윤석열계 일색 지도부와 윤심 공천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
김 대표는 이를 의식한 듯 "앞으로 외연 확장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고, '대통령실의 검사 공천' 우려에는 "공천 과정에 사심 개입이 배제되도록 철저하게 챙기겠다. '능력 중심의 민심 공천'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