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스토킹 피해자뿐 아니라 교제폭력(데이트 폭력)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와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임시숙소를 제공할 방침이다. 지난달 서울 금천구에서 폭력을 휘두른 동거 남성을 신고한 여성이 살해당하는 등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망이 허술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경찰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법조계·현장 전문가가 참여하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제 1·2전문위원회를 15일 개최했다.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제1전문위는 성폭력과 성희롱, 제2전문위는 가정폭력과 스토킹, 교제폭력을 다룬다.
이날은 가해자와 분리가 어려운 교제폭력 피해자에게 별도의 주거 공간을 지원하는 방안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현재 주거 지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나 피해자 입장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경찰은 교제폭력이나 스토킹 등 피해자가 보복당할 우려가 있는지를 28개 문항의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로 판단해 위험성이 높을 경우 임시 숙소를 권고한다. 그러나 모텔 같은 숙박시설을 임시 숙소로 지정하는 방식이라 불안감을 느끼는 피해자들은 입주를 꺼린다. 금천구 살인 사건에서는 최초 교제폭력 신고 이후 위험성 평가 결과가 '낮음'으로 나와 이런 지원조차 선택지가 되지 못했다.
교제폭력 피해자는 여가부의 여성긴급전화(1366)를 통해 보호를 요청하는 경우에도 길게는 7일까지 긴급피난처에서 머물 수 있다. 지난해 188명의 피해자가 긴급피난처를 이용했다. 긴급피난처는 모텔 같은 숙박시설은 아니지만 다른 피해자들과 공동으로 생활하는 게 입소를 꺼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여가부는 교제폭력 피해자가 숙박시설이 아닌 곳에서 보다 긴 시간을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도록 임대주택을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 스토킹 피해자는 3개월 안팎의 기간 동안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주택에서 머물 수 있다. 여가부는 내달 18일 스토킹방지법 시행에 맞춰 교제폭력 피해자 관련 지침도 개정할 계획이다.
이날 전문위원회에서는 교제폭력 발생 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긴급·잠정조치도 논의했으나 뚜렷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가정폭력이나 스토킹의 경우 수사기관에 가해자 접근금지, 유치장 구금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다. 교제폭력에 대해서도 비슷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이 2020년과 지난해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밖에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가 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기간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아동복지법에 따른 보호대상 아동은 24세까지 아동보호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데,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 입소한 청소년은 21세에 퇴소해야 해 격차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