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가 회사에 배상해야 할 손해액을 산정할 때 파업 관여 정도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를 둬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국회 본회의 부의를 앞두고 여야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입법 취지를 대법원이 일부 인정한 것으로, 향후 입법 과정에서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대법원 판결을 두고 재계와 노동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5일 현대자동차가 자사 비정규직지회 노조원 A씨 등 4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2010년 11월 15일~12월 9일 현대자동차 울산1·2공장을 25일간 점거하며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시켰다. 현대차는 A씨 등을 상대로 "375억 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며 우선적으로 2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원심(2심)은 "A씨 등의 불법적 업무방해로 거액의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며 "피고들이 '공동하여' 20억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이날 A씨 등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20억 원으로 산정된 배상금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다만 "급박한 쟁의행위 상황에서 조합원에게 정당성 여부를 일일이 판단하라고 요구하는 건 근로자의 단결권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배상 책임제한 정도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파업을 주도한 노조와 노조 지시에 불응하기 어려운 개별 조합원이 동일한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건 부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날 대법원 판단은 야당에서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의 "법원은 손배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귀책 사유의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조항(제3조)과 맞닿아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노동쟁의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 조합원별로 책임제한의 정도를 개별적으로 달리 평가할 수 있다는 첫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선 이날 대법원 판결로 노조원 책임을 일일이 따질 경우 소송 자체가 어려워져 노조 파업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란 여권과 재계의 반대 근거가 무색해졌다고 평가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의 일부 내용이 향후 입법되지 않더라도 이번 대법원 판결로 사실상의 효력을 갖게 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이 정한 법리는 하급심 판단뿐 아니라 각종 법률 사무에 영향을 끼친다.
대법원은 이날 2013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울산3공장 32라인 공정 점거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서도 "파업 이후 노동자들이 생산량을 만회해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파업 기간의 고정비 등을 기업 손해로 포함할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사측이 불법 파업으로 인한 생산량 또는 매출 감소 여부를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로 '매출 감소'를 손해액 산정의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한 셈이다. 대법원은 다만 "사측에서 생산량 회복이 파업과 무관하게 이뤄졌다는 사정을 증명하면 손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대법원은 쌍용자동차가 2009년 ‘옥쇄파업’을 벌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사건에 대해서도 노조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쌍용차가 파업 복귀자들에게 지급한 금액까지 노조 배상액에 포함시킨 것은 잘못"이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고법은 앞서 "금속노조가 회사에 33억1,14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결론 내렸지만, 대법원은 사측이 옥쇄파업을 끝내고 복귀한 근로자들에게 지급한 18억8,200만 원을 회사 측 손해로 볼 수 없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