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포드, 관능과 집요함으로 완성한 패션 왕국

입력
2023.06.15 19:00
25면

편집자주

패션 기획 Merchandizer이자 칼럼니스트 '미키 나영훈'이 제안하는 패션에 대한 에티켓을 전달하는 칼럼입니다. 칼럼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여 근사한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을 만드는 데 좋을 팁을 편안하게 전해드립니다.

미국의 디자이너 톰 포드가 자신의 브랜드 '톰 포드'를 최근 에스티 로더에 매각했습니다. 금액은 무려 28억 달러로 원화로 약 3조7,500억에 달합니다. 브랜드의 역사가 그리 깊지 않고 창립자인 톰 포드가 살아 있는 상황에서 이 금액은 매우 놀랍습니다. 그는 20년 만에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브랜드의 가치를 명품 반열까지 올려놓으면서 랄프 로렌과 함께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저물어가던 '구찌'를 살려내고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든 톰 포드는 패션뿐 아니라 영화 쪽에서도 그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를 2편 제작하였고 이는 평론가들의 높은 평점을 받으면서 영화감독으로서 그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런 톰 포드가 이번 에스티 로더의 매수를 기점으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브랜드가 꾸준히 흥행하고 있음에도 그는 마지막을 판단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톰 포드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톰 포드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우리는 톰 포드의 성공 요인과 남다른 전략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에 만들어진 브랜드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디렉터이자 영화감독, 그리고 그 스스로 브랜드가 된 톰 포드. 그가 어떤 것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봅니다.

끈질긴 집요함이 만든 톰 포드의 세상

톰 포드의 성공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집요함'입니다. 그가 처음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것, 그 후로 다양한 브랜드에서 워커 홀릭으로 일하면서 만들어 낸 수많은 결과물은 그의 집요한 집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나보다 뛰어난 디자이너는 많지만 나만큼 추진력이 있고 집중력과 간절함이 있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았으며 이를 집요하게 만들어냈습니다. 톰 포드의 우아한 말투와 제스처를 보면 쉽게 만들어 낸 것 같아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지금의 워라밸을 생각한다면 아주 다른 이야기지만, 톰 포드의 성공을 벤치마킹한다면 우리는 집요함 그리고 집착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적당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닌 한 분야에 대해 끝까지 가는 그 집요함과 꾸준함, 그리고 집착 말입니다.

톰 포드가 처음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기 위해서 캐시 하드윅이라는 당시 유명한 디자이너에게 한 달 동안 매일 전화를 합니다. 드디어 연락이 된 하드윅이 면접은 언제 볼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톰 포드는 "30초면 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 전화를 매일 회사 로비에서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톰 포드를 패션 디자이너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게끔 했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을 넘어선 집념을 보여주었고 이런 성향은 톰 포드를 표현하는 여러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관능이라는 절대 무기로 자신을 알리고 브랜드를 살린다

톰 포드가 구찌의 디렉터가 되었을 때 구찌는 소위 망해가는 브랜드였습니다. 그런 구찌를 살려낸 것은 톰 포드의 전략인 '관능'을 패션과 브랜드에 투영한 것이었습니다.

'섹스는 팔린다'라고 했던가요. 톰 포드는 과감한 실루엣과 수위 높은 디자인, 그리고 이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광고 기법을 통해 섹시한 명품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톰 포드의 전략은 기존의 명품은 우아하고 기품 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뜨립니다. 다양한 할리우드 스타가 입기 시작하고 특히 마돈나가 시상식에 톰 포드의 구찌를 컬렉션 피스 그대로 입고 등장하면서 그의 인기를 절정으로 만들어 줍니다.

당시 여러 매체에서 지나치게 선정적인 스타일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에 대해 '내 옷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여성과 남성을 위한 옷이다'라고 말하면서 섹시함이 단순한 포르노가 아닌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설파하였습니다. 당시 구찌는 톰 포드가 디렉터를 맡으면서 기존 매출의 10배가 넘는 기록을 달성하며 브랜드 가치를 다시금 절정으로 올려놓았습니다.

관능, 궁금하지만 꺼내기 어려운 것을 톰 포드는 전면으로 내세웠습니다. 섹시하되 경박스럽지 않고 우아하되 세련된 톰 포드만의 관능은 그를 표현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명품을 경험하게 하는 것, 브랜드에 대한 열망을 갖게 하다

구찌를 나와 입생로랑을 거쳐 톰 포드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브랜드를 만듭니다. 명품 브랜드에서의 성공과 이를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시작하는 것, 다른 디자이너가 밟아왔던 일종의 코스입니다. 다만 톰 포드는 여기서 다른 디자이너와 다른 방법을 택합니다. 바로 출시하는 상품입니다.

톰 포드는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안경과 향수를 출시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T자 모양이 새겨진 블랙 뿔테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상품입니다. 또한 관능적인 이름을 붙인 톰 포드의 향수 라인은 고유의 강하고 진한 향이 특징입니다. '로스트 체리'(순결을 잃다), '퍼킹 패뷸러스' 등 명품 브랜드에서 출시했다고 믿기 어려운 이름으로 관능을 다시 한번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톰 포드는 안경과 향수 같은 아이템으로 브랜드를 시작했을까요?

바로 체험입니다.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모두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명품을 소비합니다. 하지만 그 빈도가 낮을 뿐입니다. 하지만 만약 브랜드의 옷의 가격이 너무 높아 구매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그 브랜드에 대한 접근 자체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입니다.

톰 포드는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 브랜드를 경험시키고자 브랜드의 시작을 접근 가능한 안경과 향수로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액세서리의 가격도 높지만, 톰 포드 슈트가 한 벌에 500만 원 이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안경과 향수는 그를 경험하기에 좋은 시작점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톰 포드를 경험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톰 포드의 전략은 명확하게 적중하여 전 세계 다양한 고객이 안경과 향수를 구매하였고 성공적으로 안착한 그의 브랜드는 이후 남성복, 여성복 그리고 기초 화장품까지 출시합니다. 에스티 로더가 톰 포드를 높은 가격에 인수한 것이 이제 이해가 되지 않으십니까? 톰 포드의 옷은 몰라도 향수를 아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이것이 똑똑한 톰 포드의 영민한 전략인 것입니다.

패션을 넘어서 영화라는 예술에 한 걸음 다가가는 톰 포드

톰 포드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앞으로 영화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톰 포드가 성공한 디렉터이지만 영화는 말이 다릅니다. 게다가 그는 파슨스 건축학과 출신에 패션 디렉터이기 때문에 영화와도 아예 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고, 결국 현실이 됩니다.

2010년 개봉한 '싱글맨'은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로 콜린 퍼스와 줄리앤 무어 등 유명한 배우들이 나온 1960년대 배경의 이야기입니다. 한 중년 남성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세련된 미장센으로 풀어낸 이 영화를 통해 톰 포드는 감독으로서 인정받게 됩니다.

톰 포드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패션에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옷과 향수, 그리고 액세서리로 표현하던 것을 영화라는 종합 예술까지 확장시킵니다. 자신이 잘하고 잘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 집요함이 만든 결과물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는 이렇게 끝없이 공부하고 표현하며 증명합니다. 이런 그의 도전은 2017년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로 이어졌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의 3번째 영화를 기획 중이라고 그가 은퇴 후 이야기했기 때문입니다.

톰 포드의 영화는 각기 다르지만 닮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과 미장센에 대한 집요한 표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에 대한 생각과 세련된 미장센을 체험하게 됩니다. 어쩌면 벌써 우리는 톰 포드에게 동화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톰 포드, 그는 집요함을 가진 집념의 디자이너로 자신이 가진 전략을 명확하게 펼친 디자이너이자 디렉터입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브랜드를 최고의 가치로 평가받으면서 결국 매각하였습니다. 그는 과연 왜 자신의 브랜드를 절정의 순간에 매각하였을까요? 그건 바로 톰 포드라는 브랜드가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브랜드가 더 오랫동안 고객들의 마음속에서 멋진 브랜드로 남길 바라며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마저도 톰 포드의 전략일 것입니다.

톰 포드, 현대의 가장 멋진 디자이너이자 전략가이자 디렉터. 우리는 그를 또 하나의 명품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나영훈 남성복 상품기획 MD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