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확장의 길을 터줄 유전자 지식 활용법

입력
2023.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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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여권 같은 공식 서류에 성별을 표시할 때 남성을 뜻하는 M과 여성을 뜻하는 F 외에도 제3의 성을 의미하는 X를 선택할 수 있다. 12세가 되면 전문가 동의 없이 본인 결정만으로 본인의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 주들도 있다. 이런 트렌드는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으며 세부적 성정체성은 더욱 복잡해져서 현재 약 30가지 유형의 젠더가 공론화되어 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당혹스러운 감이 있을 수 있지만 점점 더 일상화될 현상이라고 보이며, 이러한 뉴노멀에 적응할 필요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럴 때 생물학적 성별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들을 살펴보면 자연계의 성별 결정 방식도 생각보다 복잡하고 변동 가능성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으며, 다양한 젠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벌레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동물은 일반적으로 암수 혹은 남녀로 구분되는 생물학적 성별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유전자 발현의 차이에 의해 좌우되며 흔히 성염색체라는 염색체들이 기본적으로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성염색체로 X염색체와 Y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XY를 가지게 된 수정란은 남성으로, XX를 가지게 된 수정란은 여성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때 X염색체에는 성별 결정과는 별도로 생존에 필요한 많은 필수 유전자들이 포함되어 있고, Y염색체에는 성별 결정 특히 남성 결정에 필요한 SRY(Sex-determining Region Y) 유전자들만 있다고 본다. 그래서 Y염색체가 없는 사람(즉, 모든 여성들)은 존재할 수 있어도 X 염색체가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조류와 파충류 같은 동물에서는 포유류의 SRY 같은 유전자 대신 'DMRT1'이라는 유전자에 의해 해당 개체가 수컷이 될지 암컷이 될지가 결정되는데, 이때는 DMRT1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존재 수량이 결정력을 갖는다. 즉 DMRT1 유전자가 포함된 Z염색체가 두 개 있는 ZZ 수정란은 수컷으로 성장하고, 한 개만 있는 ZW 수정란은 암컷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이런 대표적인 XY 방식과 ZW 방식 외에도 XO 방식과 ZO 방식도 존재한다. 가령 어떤 동물에는 Y염색체가 없어서 XX 수정란은 암컷으로, XO(즉 X염색체 1개만 있는) 수정란은 수컷으로 성장하며, 어떤 동물에는 W염색체가 없어서 ZZ 수정란은 수컷으로, ZO(즉 Z염색체 1개만 있는) 수정란은 암컷으로 성장한다.

포유류에도 설치류 중에서는 Y염색체가 없는 종이 존재하며, 사람의 Y염색체도 수백만 년 후에는 없어질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또한 남성이 나이가 들수록 면역 세포를 포함한 일부 세포에서는 Y염색체가 없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심장병과 관련되어 있다는 연구도 있다.

나아가 염색체 구성이 어떻든 온도가 높으면 수컷으로 성장하는 동물도 있으며, 반대로 암컷으로 성장하는 동물도 있다. 젊었을 때의 성별이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바뀌는 종도 있고, 수컷이 부족하면 암컷 대장이 수컷으로 변하는 종도 알려져 있다.

생물학적 성별이 염색체 구성에 의해 태생적으로 결정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연계의 다양성을 이해하면 사회적인 젠더의 확장에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환석 유전자 라이프 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