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자유로움을 얻었어요. 유튜브가 아니었으면 부상 회복이 더뎠거나 아예 첼로를 포기했을 것 같아요.”
이름 석 자보다 ‘첼로댁’이라는 유튜브 채널명으로 더 알려진 첼리스트 조윤경씨. 서울대 음대, 미국 줄리아드음악원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 최고연구자 과정을 밟았다. 프로 연주자로 비상하기 위한 이상적 코스였다. 2017년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에서 아카데미스트(인턴)로 활동하다 원인 모를 손가락 통증으로 귀국하기 전까지는.
하루 2, 3시간 연습도 어려웠다. “남는 시간에 아무 일도 안 하는 게 불안해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소양강 처녀’ ‘동백꽃 아가씨’ 등 부모님이 좋아하던 대중가요를 첼로로 켰다. 큰 욕심 없이 영상을 올렸지만, 23만 명이 홀린 듯 구독 버튼을 눌렀다. 정통 클래식 연주자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며 손가락 부상에서 회복됐고, 대중음악을 연주하며 표현력도 다채로워졌다.
그는 한국일보에 “제 영상을 보고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람, 클래식 공연을 처음 보러 갔다는 분도 있다”며 “제가 20여 년간 공부한 첼로를 놓을 수 없어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저 역시 많은 감정과 배움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유튜버는 B급 소재 콘텐츠나 자극적 영상을 통해 조회수를 올린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지금은 일류 첼리스트가, 상아탑 교수가, 변호사ㆍ의사 등 사(士)자 전문직들이, 직장인과 초등학생이 유튜브에 뛰어든다. 마냥 돈 때문에, 유명해지고 싶어서만도 아니다. 한국일보와 만난 유튜버들은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해서”, “직업적 사명감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했으면 해서” 영상을 만든다고 했다. 가히 ‘유튜브의 민족’이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 ‘일놀놀일’(웅진지식하우스)의 작가이자 네이버의 마케팅 직원인 이승희(35)씨가 2019년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는 우울증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에 익숙해질 만하자 갑자기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평가, 연봉, 업무 등이 모두 주변에 의해 결정됐다. “카메라 앞에서 독백을 하는데 이상하게 위로를 느꼈어요. 자유롭게 콘텐츠를 기획하고 영상을 만들며 몰입감에 빠질 때도 있었고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마케터로 인사이트도 얻었어요. 유튜브는 저를 한 뼘 성장시켜 준 매체인 것 같아요.”
강현준(35) 약사는 중학교 때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현재 유튜브 채널 ‘약이슈’를 운영하는 그는 유튜버가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선 여자친구가 유튜브를 해보라고 했고요. 또 약국에 오는 손님 중에 TV나 유튜브에서 본 잘못된 약 정보를 말하는 경우가 많아 바로잡고 싶었어요.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도 약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유튜브를 시작한 후 제 얼굴을 모르는 분들도 휠체어를 탄 저는 기억하더라고요.”
과거에는 유튜브에서 유명해진 뒤 공중파 TV로 진출하는 게 순서였다. 요즘은 유명 연예인이 유튜버 자리를 넘본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같은 '우주 대스타'도 TV보다 유튜브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다. 한 해 수억 원을 버는 유튜버가 탄생했고, 초등학생 장래희망 상위권도 유튜버다. 세종사이버대에서는 2020년 국내 최초로 유튜버 학과를 개설했다.
박성배(43) 세종사이버대 유튜버학과 학과장은 “유튜브 전성시대 속에서 인플루언서, 크리에이터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고, 2021년 기준 크리에이터 산업은 2조5,000억 원을 넘어섰다”며 “예전에는 궁금한 게 있으면 네이버나 구글을 검색했지만, 이제는 유튜브 영상을 찾아본다”고 했다. 영국 기술 칼럼니스트 크리스 워커는 1,000명의 유튜버를 만난 후 쓴 ‘유튜버들’이라는 책에서 “유튜브는 가장 민주적인 미디어”라며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재능을 발휘할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지며 그 영향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고 했다.
유튜브는 ‘내 정체성은 내가 규정한다’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성향에 딱 맞는 매체이기도 하다. 이승희 작가는 “유튜브에 어떤 콘텐츠를 올리는지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며 “내가 자전거 콘텐츠를 올리면 저는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책 콘텐츠를 올리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고 했다. 유튜브 안에서만큼은 ‘사회가 규정하는 나’가 아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들과 통하려는 기성세대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장홍제 광운대 화학과 교수 역시 그렇다. “제가 좋아하는 화학을 더 알리기 위해 책('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을 쓰는 등 활자 형태로 정보를 나눴는데, 요즘 젊은 세대는 글보다 영상을 더 친숙하게 여기더라고요. 앉아서 책 읽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까 짤막하게 압축된 정보를 들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화학하악’이라는 유튜브 채널명은 고 이외수 작가의 산문집 하악하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유튜버의 대중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지만 자극적 콘텐츠, 무차별 폭로, 광고 논란 등 그늘도 공존한다. 별다른 콘텐츠 없이 외모와 이름으로 단숨에 인기몰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조민씨는 유튜버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10만 구독자를 모았다. 325명의 인플루언서를 연구한 책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까지’의 저자 정연욱 작가는 “유튜브는 전 세계적 욕망의 시장”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유튜브에 도전하지만, 한편으로 자괴감을 느끼고 소외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다”며 “사회가 그런 부분을 더 날카롭게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더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의 파도에서 자신을 지키려면, 진정성이라는 구명조끼가 필요하다.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유튜버들도 자신만의 결의를 내비쳤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3년 동안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해 화학에 관한 잡지식의 아카이브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장홍제) “유튜버들이 정말 많아졌고 좋은 콘텐츠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큰 조회수를 기대하기보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을 위해 잔잔하게 콘텐츠를 계속 올리고 싶어요.”(조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