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주민들이 지난해 ‘이태원 참사’ 때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아 구속기소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박희영 용산구청장을 상대로 ‘주민소환’을 추진한다. 박 구청장이 자진사퇴 등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업무를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지역민들이 직접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1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용산구 주민 200여 명으로 구성된 시민단체 ‘용산시민연대’는 박 구청장을 주민소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7년 도입된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직자를 투표로 임기 만료 전 해직시킬 수 있는 제도다. 임기 개시 1년이 지나면 소환 청구가 가능하다. 박 구청장이 지난해 7월 1일 임기를 시작한 만큼 내달이면 청구 대상이 된다. 용산시민연대는 관내 화상경마장 추방, 지하철역 승강기 설치 등 지역 민생 활동을 해온 단체다. 최근엔 이태원 참사 유족들과 박 구청장 사퇴를 요구했다.
지역사회가 주민소환 카드까지 만지작거리는 건 보석으로 풀려난 박 구청장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 탓이다. 보석 심사에서 공황장애 등으로 수감 생활이 어렵다고 호소한 그는 석방(7일) 이튿날 곧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거듭 송구하다”면서 참사 유족과 만날 뜻을 보인 다음 날(14일)엔 항의 집회를 막아달라며 경찰에 시설보호요청까지 했다.
이날부터는 아예 구청 정문을 봉쇄해 유족의 청사 진입을 막아버렸다. 이 과정에서 격렬하게 항의하던 유족 한 명이 쓰러지기도 했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박 구청장은 참사 전후 예방, 관리, 대처에 큰 허점을 드러냈지만 사퇴를 거부했고,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뒤에도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해 유족들의 공분을 샀다. 이원영 용산시민연대 대표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잘못을 전혀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주민소환을 실행에 옮긴다 해도 요건이 까다로워 박 구청장의 해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구청장 주민소환을 청구하려면 15%가 넘는 지역 내 유권자의 동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용산구는 2만9,216명의 서명이 필요하다. 또 청구권자(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해야 개표할 수 있으며, 유효 투표 과반이 찬성해야 확정된다. 문턱이 워낙 높아 지난해까지 추진된 주민소환 126건 중 투표 자체가 실시된 경우는 11건에 불과하다. 개표 조건을 충족한 것도 고작 2건뿐이다. 2007년 경기 하남 화장장 건립 문제로 하남시의원 2명이 직을 상실한 것이 소환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다.
때문에 주민소환에 실패하면 박 구청장에게 외려 ‘면죄부’를 줄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다만 용산시민연대 관계자는 “잘못된 실정을 규탄하는 주민들의 의사 표현만으로도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