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러시아 전술핵무기 도입을 시작했다고 13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다음 달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져 있던 핵 배치 작업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고보다 훨씬 더 앞당겨진 것이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무기가 전면에 등장한 건 처음이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이 조금씩 성과를 내며 전쟁 양상이 격화하는 가운데, 개전 1년 4개월 만에 급기야 핵 위험까지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공영방송인 ‘로시야1’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받은 미사일과 (핵)폭탄을 갖고 있다. 다는 아니지만 순차적으로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옛 소련 시절 때 지어졌다가 남아 있는 수많은 핵 저장시설 중 5, 6곳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언급이 사실이라면, 당초 예고보다도 한 달가량 빨리 전술핵무기 배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저장고 등 핵 관련 시설 준비를 내달 7, 8일까지 완료한 뒤, 곧바로 벨라루스에 핵무기 배치 작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섣부른 단정은 이르지만, 일단 ‘협박 카드’일 가능성은 있다. 서방의 무기를 지원받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에 러시아가 위축되자 동맹국 벨라루스가 좀 더 일찍 핵 카드를 꺼내 든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3월 자국 영토 내 러시아 전술핵 배치에 합의한 벨라루스는 그 명분으로 “잠재적 침략자를 막기 위함”을 들며 자위용 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루카셴코 대통령은 필요시 전술 핵무기 사용을 주저하지 않겠다며 위협 수위를 높여 왔고, 이날 인터뷰에서도 “‘전쟁’이 시작되면 내가 주위를 둘러볼 것이라고 생각하나”라는 도발적 발언까지 내놨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핵무기가 전면으로 부상한 건 처음이라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게다가 이번 전쟁 여파로 북한, 중국과 러시아의 핵탄두가 증가했다는 스웨덴 싱크탱크 추산도 전날 나왔던 터라,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특히 벨라루스에 배치될 전술핵은 원래 타격 범위가 제한된 저위력 무기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를 뒤집는 언급까지 하며 핵전쟁 위기감을 부채질했다. 그는 “일부 폭탄의 위력은 미국이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보다 3배 강력하다”고 주장했다.
평소 과격하기로 유명한 러시아·벨라루스 정상이 합심한 만큼, 핵 공격 우려는 더 크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무기 사용 전에 푸틴 대통령과 상의할 것”이라며 “그(푸틴)가 어디에 있든 내 전화는 무조건 받고 나도 마찬가지다. 타격 일정 조율은 식은 죽 먹기”라고 말했다. 전화 한 통이면 핵무기를 쏠 수 있다는 뜻이다. 외신들은 이런 경고가 현실화할 경우, 벨라루스와 국경을 접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폴란드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