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를 출입하며 생긴 부작용은 미사일 안전 불감증이다. 북한이 쏜 미사일은 십중팔구 동해상으로 날아간다. 남쪽으로 쏘지 않으니 우리 코앞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합참이 출입기자단에 보내는 1보 메시지도 대부분 ‘북, 동해상으로 미상 탄도미사일 발사’다.
북한이 시험발사 명목으로 쏘기에 주변국과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고 동해 바다로 낙하시키는 거다. 미사일 정확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표적 역할을 하는 북한 무인도 ‘알섬’도 있다. 국방부 출입 전에는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는 줄 알았는데 외려 안심하게 돼버린 거다.
따지고 보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먼 나라 이야기다. 북한이 ICBM을 쏠 때마다 지면에 대서특필하면서도 속으론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거리 1만5,000㎞에 달하는 ICBM은 미국 본토 타격용이니 우리는 마음을 놓아도 되는 거 아니냐고. 평양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500~600㎞다. 미국을 향하는 ICBM이 갑자기 유턴해서 남쪽 땅에 꽂힐 리 없다. 물론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묶인 한미는 군사적 운명공동체이기에 그들의 안위가 우리 안위와 직결되긴 하지만.
하지만 일본은 사정이 다르다. 북한이 동해로 쏘는 미사일은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넘어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 ICBM 같은 중장거리 미사일이 태평양에 떨어진다 해도 일본 입장에선 자신들 머리 위로 미사일이 지나간 것 자체가 공포다.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일본 방위장관이 재빨리 마이크를 잡고, 우리 군이 정보 노출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는 미사일 제원까지 낱낱이 밝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발탄이든, 의도했든 미사일이 남쪽으로 날아오면 어떻게 될까. 대북 담당 군 장성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도 일본과 같은 대응 시스템이 있느냐고. 그는 “남쪽을 겨냥한 미사일 공격 징후가 탐지되면 행안부에서 15~30초 안에 대국민 경보를 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했다. 그리고 1년여 뒤 그 말을 실감했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분단 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을 넘겨 속초 앞바다로 미사일을 쏘자 울릉도에 공습경보를 발령한 거다.
북한이 첫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한 지난달 31일 아침, 이번엔 서울시에서 재난문자를 보냈다. 무슨 일이 터졌는지 설명은 없고 다짜고짜 “대피할 준비를 하라”고 해서 나는 지진이 난 줄 알았다. 8분 전 북한이 발사체를 쐈다는 합참 문자를 받은 데다 특별할 게 없어 보여서다. 위성 개발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북한은 국제기구에 발사 가능 날짜도 통보한 터였다. 발사체가 백령도 상공을 날았어도 경기, 인천에서 문자를 보내지 않은 이유다. 내막을 파악한 나는 다시 잠을 잤지만 이런 상황이 처음인, 대기업에 다니는 오랜 친구는 황급히 생수와 인스턴트 식품을 가방에 쌌다고 한다.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몰라 집 밖을 나서진 못했지만.
그리고 20분 뒤 행안부에서 ‘서울시 경보가 오발령’이라는 문자가 왔다. 서울시는 “안전에는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대응하는 게 원칙”이라며 오발령은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결과적으로 혼란만 부추겼다. 다음에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재난문자를 받은 내 친구는 대피용 가방을 쌀까. 안전엔 과잉이 없다지만 양치기 경보는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