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4일 북한 당국을 상대로 한 40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국내 법원에 제기했다. 2020년 6월 16일 북한이 우리 재산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는데, 이로 인한 피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정부가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70년간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처음이다. '법치'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남북관계에도 이러한 기조를 적용한 셈이다. 북한의 잇단 도발 탓에 한껏 고조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고조가 불가피해 보인다.
통일부는 이날 북한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우리 측 사무소 청사가 무너지고, 인근 종합지원센터 건물도 큰 피해를 봤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피고로 한 손해배상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원고는 대한민국이다. 정부는 폭파에 따른 국유재산 손해액을 447억 원으로 계산했다. 청사 건축 비용은 전액 우리가 부담한 바 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통일부는 "북한이 폭력적 방식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4층짜리 연락사무소 청사는 2007년 12월 준공됐다. 원래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로 쓰려고 지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해 9월 연락사무소로 리모델링했다. 여러 분야의 남북회담이 이곳에서 열리며 한때 남북협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대유행하면서 2020년 1월 남측 인력이 철수했고, 북한은 같은 해 6월 16일 대북전단 살포를 구실 삼아 건물을 폭파했다.
통일부가 3년 만에 소송을 제기한 건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가 발생하거나 이를 인지한 때로부터 3년이 지나면 사라진다. 정부는 향후에도 북한이 정부나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면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북한의 개성공단 무단 가동 △금강산 관광 설비 철거 등 우리 시설에 허락 없이 손을 댄 행위에 대해서도 손배소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두 재산은 국가가 아닌 민간기업 소유라 기업들이 소송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준다고 해도 실제 배상받는 건 다른 문제다. 북한 당국이 우리 법원에서 진행되는 소송에 응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남은 방법은 북한 재산을 압류한 것 정도다. 국내에 묶여 있는 북측 재산은 북한 영상물·음악을 사용할 때 지급하는 저작권 사용료뿐이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저작권을 위임받아 관리해왔는데, 2008년 이후 대북송금이 막히면서 20억원이 법원에 공탁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경문협은 '저작권료는 사유재산이라는 북한 당국이 책임져야 할 배상금 명목으로 쓰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왔다. 북한을 상대로 한 손배소에서 승소한 국군포로들도 경문협에 손해배상액을 대신 지급하라는 추심금 청구 소송을 냈지만 잇달아 패소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법무부 등과 협의해 강제집행 방안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에는 악재가 추가되면서 대화는 더욱 멀어질 전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정부는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일종의 압박전략으로 판단한 것 같다"며 "그러나 실제로 북한이 느끼는 압박감이 크지 않을 것이기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