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때리기에 골몰하는 한국…자국 기업 지키기 나선 미·중·유럽

입력
2023.06.15 08:00
14면
공정위, 플랫폼 기업 사전 규제 조만간 발표
미국은 빅테크 규제 법안 전면 철회
자국 기업 없는 유럽은 미·중 기업 규제 강화


공정거래위원회가 네이버, 다음 등 국내 포털을 향해 강도 높게 규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반면 국내 검색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미국의 구글은 미국 정부와 의회로부터 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이 기업 분할을 꺼낼 만큼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밀어붙이려 했지만 최근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을 벌이면서 자칫 너무 강한 규제가 자국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달 중 '플랫폼 독과점 규율개선 전문가 태스크포스(TF)'가 마련한 규제안을 바탕으로 규제 방향성을 밝힐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규제 대상 플랫폼 기업을 미리 정하고 의무를 부과하는 사전 규제 방식을 유력하게 보고 있는데 문제가 있을 경우에만 제재하는 현행법과 다르기 때문에 기업들이 경영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하고 있다.

구글, 메타 등 해외 빅테크 기업과 네이버, 카카오가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공정위가 이들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임시중지명령 제도나 법 위반 시 연 매출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내게 하는 내용 등이 거론된다.



"규제 만들어도 미국 빅테크 기업들 적용 어려울 것"


문제는 이런 규제가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에만 부담으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우리 국회는 2021년 8월 세계 최초로 구글, 애플 등 앱 장터 사업자가 자사의 결제 시스템을 강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구글 갑질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구글과 애플은 이를 교묘히 피해갔다. 두 회사는 제삼자를 통한 외부결제를 허용하면서도 수수료를 지나치게 많이 내게 해 사실상 자신들의 결제 시스템을 쓸 수밖에 없게끔 하면서 지금까지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고 있는 것.

망 사용료 문제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경우 해마다 1,000억 원에 달하는 사용료를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통신사)에게 내고 있는 반면 구글, 넷플릭스는 지불하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들이 망 사용료를 의무적으로 내도록 하는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나섰지만 통상 문제를 이유로 몇 년째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규제 기조에서 돌아선 미국 "빅테크 때리다 중국에 뒤진다"


반면 올해 들어 미국에서는 국회에 발의된 '플랫폼 독점 종식 법률', '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률' 등 빅테크 규제 법안 6개 중 5개가 폐기됐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마존 저격수'로 알려진 리나 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을 임명했을 때만 해도 빅테크 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예상됐다. 하지만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채찍만 휘두르다가 중국에 AI 기술 패권을 내줄 수 있다는 위기감에 자국 기업 대신 틱톡, 핀둬둬 등 미국서 인기 있는 중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도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정권 비판 발언 이후 2년 넘게 이어진 빅테크 규제 기조를 거두고 이제는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이에 힘입어 미국 기업과 AI 기술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수 있게 됐다. 바이두, 알리바바, 센스타임, 텐센트 등 챗GPT 형태의 AI 서비스를 개발 중인 중국 기업만 12개다.

반면 자체 플랫폼이 없는 유럽연합(EU)은 미국 빅테크를 견제하기 위해 디지털시장법(DMA) 등 포괄적 사전 규제를 마련했다. 현재 공정위가 검토하고 있는 플랫폼 규제안은 DMA와 비슷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알리익스프레스 등 미중기업이 그 대상이다.

이상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자국 플랫폼 기업을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한국 규제 당국은 더 강한 규제를 만들려고 한다"며 "한 번 만들어진 규제가 5년, 10년 이후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시장 상황을 더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