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2시쯤 경기 남양주시 일패동 번식장 주변에서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은 허가받지 않은 불법 번식장으로, 지난해 1월 동물단체가 개들을 구조하면서 문을 닫기로 약속한 곳이다.
현장을 방문한 동물구조단체 위액트와 코리안 K9 레스큐(KK9) 활동가들은 번식장 내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강아지들의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불법 번식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번식장 뒤편에는 10여 마리의 닭 사체가 뒹굴고 있었다.
활동가들은 남양주시청과 다음 날 번식장을 급습하기로 결정했지만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현장 앞을 지켰다. 그러던 중 오후 7시쯤 번식장 앞에 트럭 한 대가 나타났고, 강아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등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활동가들은 번식업자와 실랑이 끝에 현장에 진입했고, 1시간쯤 지나 남양주시 공무원과 경찰이 도착했다.
비닐하우스 형태의 번식장은 오물과 악취로 가득했고, 칸막이 속 개들이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지난해 1월 상황과 다를 바 없는 처참한 현장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강아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활동가들은 개들을 모두 구조해 철수하던 중 하우스 안에서 굳게 닫힌 문을 발견했다.
서나경 위액트 구조팀장이 문을 열자 새끼를 품고 있는 개가 있었다. 활동가들은 하우스 내 이곳저곳을 뒤져 번식업자가 숨겨둔 모견과 강아지들을 샅샅이 찾아냈다. 옆집 마당에서 발견된 강아지들도 있었다. 이렇게 구조된 개는 모두 31마리. 서 팀장은 "현장에서 불법행위가 적발됐음에도 번식업자는 당장 경매장에서 돈이 되는 강아지들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같다"며 "번식업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구조한 개들의 건강 상태는 심각했다. 질병으로 한쪽 눈을 아예 뜨지 못하는 개도 있었고, 발정제 과다 사용으로 생식기에 문제가 발생한 개도 발견됐다. 대부분 피부병, 슬개골 탈구, 유선종양 등을 앓고 있었다. 일부 개들에게선 이른바 반려견 미용학원의 실습견으로 동원된 흔적까지 발견됐다.
사실 동물구조단체의 처음 목표는 이 번식장 폐쇄가 아니었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일패동의 또 다른 불법 번식장 개들을 구조하던 중 번식업자가 빼돌린 개 두 마리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우연히 해당 번식장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 발견한 번식장에서는 6마리 가운데 현재 5마리를 구조했고, 1마리의 행방을 쫓고 있는 상태다. 서나경 팀장은 "동물단체가 개들을 구조한다는 소식이 흘러 들어가면서 번식업자가 개 사체를 치우는 등 동물학대 증거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남양주시 동물복지팀 관계자는 "(번식업자가 사체를 수거하고 개를 이동시킨 것은) 상황 파악을 위해 번식업자를 수소문하던 중 해당 내용이 전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번식업자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번식장 실태조사에 들어갔다"며 "불법 번식장을 비롯해 허가 번식장이라고 해도 기준을 지키지 않은 경우 강력조치 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개정된 동물보호법 시행으로 동물생산업에 이어 판매업이 신고에서 허가제로 전환됐고, 인력과 시설 기준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불법 번식장들이 성행하고 있다. 최근 경기 양평군에서 1,200여 마리의 개 사체가 발견됐는데, 동물처리업자가 번식능력이 떨어진 개들을 번식업자로부터 넘겨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처리업자는 동물보호법상 법정 최고형인 징역 3년을 선고받았고, 번식업자 30여 명은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여전히 펫숍이 성행하고 음지에서 영업하는 불법 번식장도 셀 수 없이 많다"며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기준이 개선됐지만 1명이 50마리를 관리하는 등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함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가 동물생산업 전수조사를 하고, 이들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번식장과 펫숍을 찾는 수요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