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노키즈'라는 1990년생 남성 박민우(33·가명)씨. 서울의 괜찮은 대학을 졸업해 내로라하는 회사에 다니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도 있건만 현재 그에게 결혼·출산은 "살아 생전 절대 안 할 것 같은 일"이다. 일단 가정 형편상 신혼집 장만에 도움을 받기 어렵다. 또 입시 경쟁에 고통받던 자신의 청소년기를 돌이켜보면 더 그렇다. 계층 이동 사다리가 붕괴된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출산은 '도무지 못 할 일'이 된다. "한 사람의 우주를 만들어 가는 숭고한 일이, 적어도 이런 환경에서는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있어요."
30년. 딱 한 세대가 지났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인의 생애주기는 역사상 이런 사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우 극적인 지연 현상을 경험했다. 1990년대엔 30줄에만 들어서면 '노총각·노처녀' 딱지가 붙었지만, 현재는 민우씨 같은 '미혼 30대'는 소수가 아닌 주류다. 2020년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30대 남성 중 절반(50.4%)이, 30대 여성 셋 중 하나(32.7%)가 미혼이었다.
애초에 청년 스스로 '성인이 됐다'고 느끼는 시기가 늦다. 민법상 성인은 19세지만, 최근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청년들이 '자주 또는 항상 성인이 됐다고 느낀다'고 답하는 나이는 평균적으로 28세였다(유민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성인 이행기 청년의 결혼·출산 인식과 함의').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한 성인이 되기까지의 과도기인 '성인 이행기'가 길어질수록 결혼과 출산도 늦어진다.
평균 초혼 연령도 1990년 남자 27.8세 여자 24.8세에서 2000년 남자 29.3세 여자 26.5세로 늦춰지더니, 지난해엔 남자 33.7세 여자 31.3세까지 올랐다. 남녀 모두 서른 지나서 결혼하는 만혼이 보편적이다. 혼외 출산 비율은 2%대로 극히 낮은 한국에서는, 결혼이 밀리면 출산도 밀린다. 임신 준비 시기가 늦어지면 생물학적 제약이나 사회문화 영향으로 한 자녀나 무자녀인 가정이 늘어나게 된다.
평균 초산 연령도 오름세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급격한 상승세다. OECD '2022 한국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초산 평균 연령은 1993년 26.23세에서 2020년 32.30세로 27년 만에 6.07세 올랐다. 같은 기간 미국은 2.7세(24.4→27.1세), 영국은 3.3세(25.8→29.1세), 일본은 3.5세(27.2→30.7세) 올랐다. OECD는 "한국 여성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냉혹한 선택에 직면해 출산 등을 미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산모의 고령화로 최근 10년새 20대 분만은 63%(10.5만→3.8만 건), 30대 분만은 38%(30.3만 →18.5만 건) 감소한 반면, 40대 분만만 유일하게 43.4% 증가(1.3만→1.9만 건)하기도 했다(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유민상 연구위원은 "성인 이행기가 고등교육 보편화와 노동시장 진입 연령 상승 등으로 길어진 점은 고려하지 않고, 청년들에게 과거와 같은 방식의 결혼과 출산 선택을 요구하는 건 효과적이지 않다"면서 "출산을 강권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만 못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니트(NEET·학업이나 직업훈련을 받지 않는 미취업 상태) 청년 지원, 학자금 대출 상환 기간 단축 등 청년의 경제적 자립과 자산 형성을 돕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성인 이행기를 단축시켜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