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존엄한 까닭은 '가능성' 때문이다

입력
2023.06.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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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 엘 그레코의 ‘무염시태’

가톨릭교회는 아기 예수의 탄생(성탄)을 앞둔 4주간을 ‘대림(待臨) 시기’로 정해 성탄의 의미를 기린다. 개혁적인 가톨릭 사제와 신학자들은 그 기간을 신앙과 인권, 인간의 존엄성을 겹쳐 사유하고 환기하는 계기로 해석한다. 그 해석의 중심에 ‘무염시태(無染始胎)’가 있다. 무염시태(또는 무염수태)는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동정으로 구세주를 잉태했다는, 즉 신이 인간으로 강생했다는 믿음. 인간이 특별히 존엄한 까닭은 그들이 '특별히' 선하거나 영민해서가 아니라 신처럼 선하고 영민해질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부여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무염시태는 성경에 명기돼 있지 않고 원죄의 보편성과도 배치돼 아퀴나스 같은 신학자들이 반대했고 교황청도 오랫동안 선뜻 공식 교리로 선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본주의 시대 수많은 예술가는 신과 인간의 결합을 상징하는 무염시태를 경쟁적으로, 도상적 상징으로 구현했다. 무염시태는 1854년에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 가톨릭 공식 교리로 선포됐다.

스페인에서 활동한 그리스 출신 르네상스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도 대작 ‘무염시태(The Immaculate Conception)’를 숨지기 1년 전(1607~1613) 완성했다. 완벽을 기하려던 그는 사전 스케치를 겸해 작은 크기의 ‘모델 무염시태’를 약 2년(1607~1608)에 걸쳐 먼저 그렸다.
한 스페인 금융가(Juan Selgas)가 소장한 ‘모델 무염시태’가 스페인 내전기인 1936년 도난당했다가 1971년 6월 16일 미국 뉴욕에서 FBI에 의해 회수됐다. 스페인 정부가 인터폴을 통해 국제사회에 수배해둔 국보급 예술품이었다. FBI는 약 4년간 작품 거래 이력을 추적, 절도 및 장물거래 용의자는 모두 숨진 사실을 확인했다. 욕망의 범죄로 40년간 감춰졌던 ‘모델 무염시태’는 1975년 6월 뉴욕지방법원 민사부 판결에 따라 셀가스 가문에 반환됐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