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에게 성희롱과 폭언 등 비위 행위를 저지른 검찰 공무원을 해임하는 건 부당하다는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법조계에 "성희롱은 맞지만 고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1심 판결에 대해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9-1부(부장 김무신)는 지난달 32년 차 검찰 공무원 A씨가 검찰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1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
대검찰청은 2021년 9월 A씨를 해임했다. A씨가 ①2019~2020년 서울중앙지검 근무 시절 여성 수사관들에게 룸살롱을 연상케 하는 주점 사진 등 부적절한 메시지를 보내거나 회식 자리에서 "네가 제일 뚱뚱하다"고 말하는 등 수차례 성희롱을 하고 ②동료 직원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하고 ③2019년 2~9월 17회에 걸쳐 마음대로 조기 퇴근하는 등 품위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대검 판단이었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법정에서 "징계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①발언 자체가 성희롱과 폭언이 아니고 ②청사 후문을 통과한 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오후 6시 이후라 조기퇴근이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A씨는 그러면서 "해임은 비위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한 처분"이라고 했다.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김순열)는 지난해 9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징계사유는 모두 인정했다. 'A씨의 발언과 메시지 전송 등으로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꼈다'는 피해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성희롱이 맞고, 출입기록 등을 고려하면 조기 퇴근으로 인한 직무태만도 맞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그러나 "해임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특히 "성희롱은 맞는데 고의가 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공직사회 내 성비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고돼야 한다는 공익적 목적은 해임이 아닌 강등 이하의 징계를 통해서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고의성이 없다'는 판단에 대한 구체적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은 해임이 정당하다고 봤다. 1심과 같이 징계사유에 문제가 없다고 보면서 "성희롱의 고의성도 입증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A씨의 주관적 입장에선 성희롱의 의도가 없었더라도 '고의'에는 '상대방이 어떻게 인식할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며 "A씨에게 성희롱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①A씨가 부적절한 연락을 하자 피해자가 "갑자기 무슨 말 하시는 거예요"라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는데도 주점 사진을 재차 보냈고 ②A씨가 과거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했던 점을 감안한 것이다.
재판부는 "A씨는 고도의 청렴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검찰 공무원인데도 자신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나이 어린 하급자를 성희롱했다"며 "성희롱뿐 아니라 부적절한 언행 등 비위행위가 복합돼 있는 데다 검찰 내에서 성희롱 등이 문제 돼 해임한 사례도 있어 재량권 남용이 아니다"고 밝혔다. A씨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법조계에선 1심 판결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성폭력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들은 법정에서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고, 1심 재판부는 '고의'를 가해자 중심으로 해석했다"며 "법원이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