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을 편하게 벌리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는 듯 활을 들어 올린다. 숨을 천천히 내쉬며 활을 잡은 앞손을 힘껏 밀고 시위를 잡은 뒷손으로는 화살을 쥔 채 호랑이 꼬리를 잡아당기는 듯 끌어당긴다. 두 팔이 파르르 떨린다. 깍지(손가락 보호대)를 ‘툭’ 소리와 함께 푸는 순간 시위를 떠난 화살이 커다란 호를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145m 바깥에 세운 과녁에 ‘타악’ 하고 화살이 맞는 소리와 함께 옆에 초록 불빛이 켜졌다. ‘관중’이다.
5일 새벽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강원 원주시 학봉정에선 활쏘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허리춤에 파란 띠를 두른 궁수들이 활을 들고 사대에 일렬로 자리를 잡는다. 40, 50대의 궁수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백발의 학봉정 시니어팀이다. 7명으로 구성된 대한궁도협회 산하 원주시궁도협회의 학봉정 시니어팀 평균 나이는 88.6세로 전국 시니어팀 중에서도 최고령이다. 다른 팀보다 평균 나이가 10세 이상 많다. 전국 대회가 열릴 때마다 은발 사수들의 활 솜씨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기도 한다.
학봉정 시니어팀의 맏형은 1923년생으로 올해 101세인 김택수씨다. 교직생활 은퇴 후 60대에 처음 활을 잡은 김씨는 40여 년 동안 거의 매일 새벽 활터에서 시위를 당겨왔다. 하지만 이날 취재진이 학봉정을 찾은 날에는 아쉽게도 김택수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전날 풀베기 작업 때문에 어깨 통증이 있어 하루 쉬어가는 날이었다.
이날은 올해 94세인 장동성씨가 맏형 역할을 대신했다. 활을 쏜 지 50년이 넘은 장씨는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휩쓰는 국궁 4단의 우수한 실력을 자랑한다. 그의 국궁 경력은 학봉정 궁도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원주에 처음 궁도회가 창립했을 때부터 활쏘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활동하는 회원은 장씨가 유일하다. 그는 9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곧은 허리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활을 잡았다. 기자도 힘겹게 당긴 시위를 장씨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당겨 어렵지 않게 145m 떨어진 과녁까지 화살을 보냈다.
장씨는 “다른 여러 운동들도 즐겨왔지만 마흔 살 넘어서 시작한 국궁이 나이가 들어도 가장 안전하고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면서 “상대가 없이도 혼자서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육체적인 건강과 함께 정신 운동에도 도움이 돼 힘닿는 데까지는 계속 활쏘기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씨와 함께 사대에 선 안중락(87) 박형원(83) 임경근(83) 회원 역시 80대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곧은 자세를 소유하고 있었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가슴을 펴지 않으면 활을 당길 수가 없어 수십 년간 매일같이 활을 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자세를 유지하게 됐다고 한다.
테니스를 치다 허리를 다친 후 직장 동료 추천으로 허리 치료를 위해 처음 활쏘기를 시작했다는 안씨는 “국궁은 화살이 날아가 과녁을 맞았을 때의 쾌감도 느끼면서 육체와 정신을 함께 단련시키는 운동이다. 그러면 노인들의 운동 중에 최고의 운동이 아니겠냐”면서 엄지를 치켜들었다. 박씨는 “활쏘기는 정중동(靜中動)의 운동이다”라면서 “겉으론 정적인 운동 같지만 매우 격렬한 근육운동과 긴장의 연속”이라고 설명했다.
국궁은 팔 근력만 있으면 가능한 운동이라고 잘못 알 수 있지만 사실 전신운동이다. 발끝에 힘을 주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관절에 좋다. 또한 시위를 당길 때 팔과 척추에 힘이 들어가서 근력이 강화되고 손의 떨림을 줄이기 위해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게 된다. 자연을 벗 삼아 활을 쏘다 보면 정신이 맑아진다. 화살을 수거하기 위해 145m의 거리를 걸어서 수차례 왕복하는 것도 적지 않은 운동이 된다. 국궁이라는 스포츠가 평생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은 평균나이 88.6세의 학봉정 시니어팀이 몸소 증명하고 있다.
국궁 예찬론을 펼치던 학봉정 시니어팀이 가장 강조한 무병장수 비결은 바로 ‘긍정적인 마인드’였다. 장씨는 “운동도 중요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