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이 한국에서 난타당하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한국의 반응은) 부당하다"며 한국을 비판했다. 11일엔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를 초치한 사실을 공개해 한중 외교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정부는 지난 8일 싱 대사를 초치했다.
한국 외교가에선 "싱하이밍의 (공개적 발언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확성기 외교'가 한중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 외교부는 11일 "눙룽 부장조리(외교부 차관급)가 어제 정재호 대사를 만나 싱 대사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교류한 것에 (한국 정부가) 부당한 반응을 보인 것에 심각한 우려와 불만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눙 부장조리는 "한국 각계 인사와 접촉하는 것은 싱 대사의 업무"라며 "싱 대사는 (한국과 중국의) 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촉진해 중한관계 발전을 추진·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이 대표를 만나 "(한국)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며 "이는 잘못된 판단이며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싱 대사가 주재국 정부를 압박하는 발언으로 해석돼 '갑질 외교', '내정 간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9일 싱 대사를 불러 "외교 사절의 임무를 우호 관계 증진으로 규정한 '비엔나 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난다"고 항의했다. 중국도 정 대사를 불러들여 "한국이 부당하게 반응했다"며 맞불을 놓은 셈이다.
중국의 한중관계 전문가들도 "한국의 반응이 과했다"고 주장한다. 지한파 학자인 뉴린제 산둥대학교 중·일·한 협력연구소장은 11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들어 한국 여론이 중국 매체나 싱 대사의 발언 등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 같다"며 "외교관의 화법과 발언의 본질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관계도 중시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발언인데, '베팅'이라는 표현에 초점이 맞춰지며 오해를 낳았다"고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학계 인사도 오바마 행정부 때인 2013년 12월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미국에 반대하는 베팅은 결코 좋은 선택이 아니다"고 발언한 전례를 들며 "싱 대사의 발언만 문제 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논란은 싱 대사의 행보에 대한 한국 외교 당국의 누적된 불만이 폭발하면서 벌어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 정부에도 한중관계를 관리하겠다는 나름의 의지와 계획이 있다"면서 "싱 대사가 공개 석상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통에 운신의 폭이 되레 좁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와 싱 대사의 관계는 시작부터 껄끄러웠다. 윤 대통령은 대선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할 때인 2021년 7월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철회를 주장하려면 중국 국경에 배치한 장거리 레이다부터 철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싱 대사는 "중국 레이다가 한국에 위협이 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반박문을 언론을 통해 냈다.
싱 대사의 행동은 시진핑 정권의 '한국 대선 개입' 논란으로 번졌고, 당시 문재인 정부는 "한중관계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싱 대사에게 자중을 요구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싱 대사의 스타일은 한국과 중국의 실질적인 소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