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8년 6월 27일 오전 6시 동부전선 부대 생활관. 정고운(가명) 상병이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주변은 고요하다. 몇 명 없는 전우들마저 보이지 않는다. 모두 모니터링 근무에 투입된 모양이다. 인공지능(AI)이 결합된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지켜보는 임무다. 덕분에 불침번은 사라졌지만, 대신 하루 종일 화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허리가 좋지 않은 정 상병도 마찬가지다. 입영신체검사 4급 판정이라 2023년이라면 사회복무요원으로 현역 입대를 피했겠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다.
#아침 먹으러 가는 길. 오늘따라 식당이 유난히 멀게 느껴진다. 국군 병력 60만 명이 넘었을 때 조성한 주둔지다. 현재 병력은 30만 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투정 부릴 여유는 없다. 서둘러 먹고 교대하러 가야 한다. 징집병으로 끌려온 데다 사람이 귀하다 보니 작은 일에도 서로 짜증만 쌓인다. 유일한 낙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전역 날짜를 다시 곱씹어 본다.
가상의 상황이지만 곧 맞닥뜨릴 우리 군의 미래 자화상이다. 2022년 합계출산율은 겨우 0.78명. '인구절벽'이 가속화하면서 병역자원이 국방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불일치가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우리 군의 평시 병력은 50만명 수준이다. 육군 36만5,000명, 해군·해병대 7만 명, 공군 6만5,000명으로 구성돼 있다. 2020 국방백서에서 육군 42만 명, 해군·해병대 7만 명, 공군 6만5,000명으로 총 55만5,000명에 달했지만, 불과 2년 만에 10%에 달하는 5만5,000명이 줄었다.
10년 전인 2012년과 비교하면 병력 감소는 더 확연하다. 2012년 국방백서는 우리 군 병력을 육군 50만6,000명, 해군·해병대 6만8,000명, 공군 6만5,000명으로 총 63만9,000여 명이라고 기술했다. 당시와 비교하면 해군·해병대 병력은 소폭(2,000명) 증가했고 공군은 현상을 유지했다. 반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육군은 4분의 1이 넘는 14만1,000명(약 27.9%)이 줄었다. 그로 인해 총병력은 21.8% 감소했다.
병력이 줄어드니 기존 군부대를 유지하기도 버겁다. 2010년 이후 육군 사례만 보더라도 2019년 1월 1일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와 제3야전군사령부가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됐다. 사단급의 경우 통폐합이나 아예 없애는 부대 재편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육군 26사단은 2018년, 20사단은 2019년, 57사단은 2011년 각각 8·11·56사단에 통합됐다. 이외에 2011년 76사단을 시작으로 71사단(2016년), 61·65사단(2017년), 30사단(2020년), 23사단(2021년), 27사단(2022년)이 부대 간판을 내렸다. 2025년에는 28사단이 해체될 예정이다.
역대 정권이 단계적으로 징집병 의무복무 기간을 줄인 것도 병력 감소의 한 원인이다. 노무현 정부는 육군 기준 기존 30개월 근무를 26개월로, 이명박 정부는 21개월로, 문재인 정부는 다시 18개월로 줄였다.
이처럼 10년간 병력이 20% 넘게 줄었지만, 이는 위기의 서막일 뿐이다. 1982~1984년 출생자가 그 이전의 80만 명 이상에서 70만 명 이하로 줄어든 충격은 아직까지 잦아들지 않았다. 이른바 '1차 인구절벽'이다.
끝이 아니었다. 2000~2002년 ‘2차 인구절벽’이 찾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가 길어지면서 60만 명 중반대를 유지하던 신생아 숫자가 이 시기에 50만 명 이하로 급감했다. 고용 불안, 집값 급등과 같은 육아 여건 악화가 저출산을 부채질한데 따른 것이다.
병역자원 절벽 추세
인구절벽으로 병역자원 확보에 직격탄을 맞았다. 조관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은 2021년 논문 ‘미래 병력운용과 병역제도의 고민’에서 “2000년의 합계출산율 1.48이 2020년 0.84로 크게 떨어져 앞으로 20년 동안 병역자원 급감은 정해져 있다”고 단언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20세 남성 인구는 2020년 33만여 명에서 2023년에는 25만 명, 2040년에는 14만여 명 수준으로 감소한다. 2020년과 2040년을 비교해 불과 20년 사이에 병역자원이 절반 이하로 급감하는 셈이다.
조 책임연구위원이 2022년 발표한 ‘2040 국방인력운영체계 설계방향’을 근거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현행 육군 복무기간 18개월을 기준으로 오는 2025년 우리 군의 병력 규모는 병 규모 30만 명에 간부 20만 명으로 총 50만 명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2040년의 상황은 참담하다. 18개월 복무 기준, 병 규모는 16만~17만 명에 그친다. 설령 간부 규모가 유지된다고 해도 총병력은 36만~37만 명으로 줄어든다. 복무기간이 12개월로 단축되는 경우 병사 규모는 10만~11만 명에 그쳐,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반대로 현재보다 복무기간을 6개월 연장해 24개월 복무를 가정한다고 해도 22만~23만 명에 불과하다. 목표치와 상당한 괴리가 있다.
병사 외에 간부로 범위를 넓힐 경우 상황은 더 암담하다. 1차 인구절벽과 병 복무기간 단축 영향 등으로 간부를 지원하는 남성 입대자는 가파르게 줄고 있다. 2020년 학군·학사장교 지원 인원은 불과 3년 전인 2017년에 비해 절반 수준이고, 부사관은 3분의 2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정책이 월급 200만원 같은 병사 복지 확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간부들의 박탈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조 책임연구위원은 “2차 인구절벽 시기에 때어난 남성이 군 간부로 활약할 20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시성 한성대 교수는 2020년 '인구절벽시대 병역자원 감소에 따른 한국군 병력구조 개편 발전방향 연구' 논문에서 "미래 한국군 상비병력은 예비전력 정예화와 국방민간인력 활용,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한 첨단과학기술군을 전제로 최대 45만 명에서 최소 35만 명을 가장 최적의 규모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현재 50만 명과 차이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