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가해자 신상공개... 문제 많은 '사적 제재' 대책 없나

입력
2023.06.10 14:00
'디지털 교도소' '배드파더스' '나쁜 집주인' 등
민간 차원의 가해자 등 신상정보 공개 잇달아
정통망법상 명예훼손·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사적 제재 해당돼 형사처벌 가능성 적지 않아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신상정보가 한 유튜버에 의해 공개되면서 ‘사적 제재’ 또는 ‘사적 응징’ 논란이 재점화됐다. 경찰 등 공공 기관에 의한 흉악 범죄자 등에 대한 제도화된 신상공개나 사법절차에 따른 처벌 등이 시민들의 법감정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사인(私人)에 의한 신상정보 공개를 통한 사적 제재를 통쾌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이런 행위 역시 범죄 행위에 해당해 사법처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는 지난 2일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A씨의 사진과 실명, 생년월일, 직업, 출생지, 키, 혈액형, 신체 특징 등의 정보를 포함한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동영상은 9일 현재 6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해당 채널 운영자는 이후에도 A씨의 전과 이력 등 개인정보가 담긴 동영상을 잇달아 게시했다.

채널 운영자는 수감 중인 A씨의 동의는 물론 사건 피해자와 사전에 연락하지 않았고, 해당 동영상이 공개된 후 피해자가 먼저 채널 운영자에게 연락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사건과 직접 관계가 없는 제3자가 가해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튜버 표예림씨는 올해 3월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2003~2015년 학교폭력(학폭)을 당한 사실을 폭로한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도 공개했다. 이어 가해자를 특수상해 혐의 등으로 고소하는 한편,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12년간 당한 학교폭력에 관한 청원’을 올려 학교폭력 공소시효와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 가해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여지가 있는 조항을 폐지해 달라는 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은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중이다.

표씨 사건은 올해 초 학폭 피해자의 복수극 ‘더 글로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큰 관심을 끌었고, 가해자 측에서 표씨의 폭로 후 협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후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신상이 공개된 ‘카라큘라 탐정사무소’ 채널에서 표씨에게 학폭을 저지른 가해자로 지목된 4명의 이름과 졸업사진, 근황 등이 공개됐다.


유튜브 채널서 학폭 가해자 신상정보 공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텔레그램에 성 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n번방’ 사건 때도 신상정보 공개가 이뤄졌다. ‘n번방’과 유사한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이 서울경찰청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거쳐 살인과 같은 흉악범죄가 아닌 성범죄로 신상이 공개된 첫 사례로 기록되는 등 국가기관에 의한 신상정보도 이뤄졌지만, 성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한 ‘디지털 교도소’도 생겨났다. 디지털 교도소는 성범죄자 신상을 민간 차원에서 공개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져 신분을 알 수 없는 사이트 운영진들이 특정 성범죄 용의자 신상을 제보받은 뒤 일정 과정을 거쳐 검증한 뒤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신상이 공개된 B씨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교도소 측은 계속해서 B씨 신상을 공개했고, B씨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해 논란이 됐다. 또 허위 정보가 담긴 신상 공개로 두 사람이 억울한 피해를 입는 일도 생겼다. 민간 영역에서 이뤄진 검증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성범죄나 흉악범죄 외에도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한 사례도 있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의 모임이라고 주장하며 전세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한 ‘나쁜 집주인’ 사이트도 있고, 이혼 후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지만 지급하지 않고 있는 부모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배드파더스’라는 사이트도 존재한다.

배드파더스의 경우 허위 신상정보가 유포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제보자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법원 판결문 또는 공증 각서처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서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공개 전 당사자에게 미리 통보를 하고, 공개를 한 후에도 욕설이나 비방 등을 할 수 없도록 명단만 공개하며, 공개 후라도 양육비가 지급된 것이 확인되면 정보를 지운다고 한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

이렇게 가해자 등의 신상정보를 민간 차원에서 공개할 경우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우선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 소지가 있다. 정보통신망법 70조 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개된 정보가 허위사실일 경우 처벌 강도는 더 높아져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형법상 명예훼손에 비해 ‘비방할 목적’ 요건까지 요구되기 때문에 가중처벌되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통상 개인정보보호법은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 파일을 운용하기 위해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을 통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공공기관, 법인, 단체 및 개인 등 ‘개인정보처리자’를 규율 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특정한 경우 일반인도 처벌받을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70조 2호는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다른 사람이 처리하고 있는 개인정보를 취득한 후 이를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제3자에게 제공한 자와 이를 교사·알선한 자를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서정아 대변인은 “보통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를 규율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개인정보를 부정한 목적으로 취득해서 부정한 목적으로 공개할 경우 개인정보처리자가 아니라도 형사처벌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처리자 아니라도 처벌받을 수 있어"

개인정보처리자가 아닌 개인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단을 받은 대표적인 사례가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다. 디지털 교도소를 운영하면서 성범죄자 등 강력범죄자의 신상정보를 무단 공개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C씨에 대해 대법원은 2021년 12월 당시 징역 4년과 추징금 1,890여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C씨는 2020년 3월부터 디지털 교도소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 계정 등을 운영하면서 법무부 ‘성범죄자 알림e’에 게재된 성범죄자 및 디지털 성범죄, 살인, 아동학대 피의자 등 176명의 신상 정보와 법원 선고 결과 등을 무단 게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C씨의 형량은 베트남에서 대마를 9차례에 걸쳐 흡연한 혐의(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와 다른 공범들과 함께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하고 베트남 호찌민에서 운영 및 개설 등을 방조한 혐의(도박공간개설방조)도 병합심리한 결과다.

법률사무소 한비의 김재화 대표변호사는 “타인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는 현행법상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사적 제재라는 측면, 주변인에 대한 2차 가해 위험성, 잘못된 정보일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한 명예훼손 행위는 그 접근 용이성, 전파의 신속성, 광역성, 피해 회복의 곤란성 등으로 인해 피해자들에게 일반적인 명예훼손 행위와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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