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으로 마음의 화상까지 치료하는 병원

입력
2023.06.10 08:50
대구 광개토병원, 매주 일요일 오후 개최
의료진과 환자, 교향악단이 함께 '인기'



"주말이면 병원이 콘서트장으로 바뀌면서 전 층에 노랫소리가 퍼집니다."

대구지역 화상전문 치료 병원인 광개토병원이 매주 일요일 오후 화상 환자를 위한 음악회를 열어 호평받고 있다. 지역의 교향악단과 병원장의 재능기부로 시작해 정기 공연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21일 오후 1시 대구 중구 광개토병원 17층에서 '베사메무초' 연주가 병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지역의 교향악단인 '인어스브라스앙상블'팀과 김주성 광개토병원장이 개최한 음악회였다. 관객들은 대부분 환자와 가족과 지인들이다.

첫 무대는 광개토병원 '아이유'란 별명을 얻은 박서진(효성초2)양이 마이크를 잡았다. 박 양이 인어스브라스앙상블의 반주에 맞춰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인 '도레미송'을 부르자 실내를 가득 메운 관객들이 박수가 흘러나왔다. 어깨를 들썩이며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가 만들었다. 다음 곡은 에델바이스. 관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양손을 들고 율동으로 화답했다. 한 곡씩 끝날 때마다 틈을 두지 않고 앙상블팀이 귀에 익은 가곡이나 팝송이 연주해 열기를 이어갔다.

박 양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김주성 광개토병원 병원장이었다. 트럼펫을 들고 무대에 섰다. 그는 "연습 시간이 일주일밖에 안 돼 조금 서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다"며 '꽃 피는 봄이 오면'을 연주했다. 간간이 음 이탈이 나고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지만, 마지막 구절까지 마친 그는 "다음 주에는 더 숙련된 연주로 찾아오겠다"며 허리를 숙였다.

피날레 무대는 인어스브라스앙상블팀이 메인으로 장식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 원장이 멤버별 담당 악기와 경력을 소개하자 각자의 악기를 통해 소리로 인사를 대신했다. 소개가 끝난 후 유명 가곡과 팝송, 가요 등 클래식 공연까지 이어갔다. 관객들은 눈을 감고 음악 소리에 심취했다. 연주가 마칠 때마다 휘파람과 박수가 이어졌다.

마지막 연주곡은 가수 인순이의 '거위의 꿈'이었다. 환자 의료진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떼창을 했다. 광개토병원에서만 볼 수 있는 환자 감성 치유 콘서트였다.

음악회가 시작된 것은 4월이었다.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김 원장과 교향악단 인어스브라스앙상블 박해준 단장의 의기투합이 계기가 됐다. 박 단장에게 트럼펫을 배우고 있는 김 원장이 '환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고 싶다'고 밝혔고 박 단장은 함께 무대를 만들 것을 권유했다. 이에 앙상블 단원들이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가세했다.

일회성으로 기획했던 음악회는 환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2회, 3회로 공연이 이어졌다. 환자들과 가족들의 참가 신청도 이어지면서 김 양 같은 '스타'도 탄생했다. 너도나도 재능을 기부하겠다는 이들 덕에 참여자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한 환자는 "음대 교수로 임용된 딸의 첫 연주회를 앞두고 화상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공연도 보지 너무 아쉬웠는데, 병원 공연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받았다"면서 "병원에서 이런 공연을 매주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공연을 두고 병원 안팎으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문병을 온 이들도 공연 시간을 맞춰서 오는가 하면 무대에 서고 싶다고 밝히는 이들도 많다. "참가자들의 노래와 재미를 따지면 유명 공연 못지않은 라이브공연"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주성 광개토병원장은 "일회성으로 시작한 공연이 참가자들이 늘어 이제는 정기 음악회가 되고 있어 기쁘다"며 "공연으로 환자들의 마음마저 치료하는 의료기관으로 알려지는 것도 좋지만, 다른 병원들이 자극받아 병원 음악회가 대구시 전체에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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