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 합당’이 만든 지역구도… 세대구도 힘 빠지면 돌아온다

입력
2023.06.10 04:30
13면
노무현 서거ㆍ복지 정책ㆍ2040 부상 
민주화 세력 전성시대 열였지만 
2030 투표율 다시 하락세...
‘지역구도’ 재부상 가능성 암시

편집자주

자기 주장만 펼치는 시대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인사이트)이 아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아웃사이트)이 필요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격주로 여러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관점의 글쓰기에 나섭니다.


1987년 이후 한국 정치사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 지역구도, 세대구도의 각축장이었다. 1980년 광주항쟁 이후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의 기간은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작용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시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부활한 경우다. 1980년 광주부터 최근까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는 한국 정치의 가장 밑바닥을 받쳐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2022년과 2023년 두 번에 걸쳐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행사에 대해서는 예우를 갖추고 있다. 윤 대통령 본인이 직접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임 보수 정부였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차별화된다. 윤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도,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지역 구도는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내장되어 있었다. 노태우 후보는 대구ㆍ경북에서, 김영삼 후보는 부산ㆍ경남에서, 김대중 후보는 호남에서, 김종필 후보는 충청권에서 압승했다. 당시에는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3김’이라고 표현했다. 1987년 이후의 정치구도는 3김 정치인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분할 구도가 명백했다.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은 여소야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3당 합당을 한다.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한다. 200석이 넘는 초거대 여당이었던, 민주자유당(민자당)의 탄생이다.


‘지역 구도’의 부상 - 1990년 3당 합당이 갖는 세 가지 의미

한국 정치사에서 3당 합당의 의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3당 합당은 크게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3당 합당은 ‘권위주의 세력이 주도한’ 다수파 정치연합의 대표 사례다. 1987년 6월 항쟁의 에너지가 강력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보수가 정치적 주도권을 가진 것은 1990년 3당 합당을 통한 정치재편 때문이었다.

둘째, 권위주의 세력이 주도하되, 민주화 세력 일부를 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김영삼 대통령과 부산ㆍ경남 지역은 4ㆍ19, 부마항쟁,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화 운동의 한 축이었다. 요즘 민주당에서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면, 3당 합당은 ‘수박 혁명’이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서 ‘수박’은 겉은 파랗고, 속은 빨간 경우를 지칭한다. 과거 냉전 우파들이 ‘빨갱이 사냥’을 했던 것처럼, 현재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수박 사냥’을 한다. 둘은 원리적으로 동일하다. 생각이 다른 집단을 공동체의 적(敵)으로 규정하는 흑백논리의 사고방식이다.

아무튼, 3당 합당은 보수 입장에서 ‘수박을 품어 안는’ 혁명이었다. 동시에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의 후보 선출과 대통령 당선은 (보수 입장에서) ‘수박을 통한 집권’을 의미했다. 한국 보수 내부에 ‘민주화 DNA’의 일부가 심겨지는 효과를 냈다. 이후 한국의 보수 역시 (매우 더디지만) ‘점진적 민주화’에 동참하게 된다.

셋째, 3당 합당은 ‘지역 대연합’을 통한 호남 포위 구도를 만들어냈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주변으로 밀리고, 지역주의 구도를 전면에 부상시켰다.

역순으로 정리해보면, 1990년 3당 합당은 한국 정치사에서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지역 대연합이었다. 대구ㆍ경북, 부산ㆍ경남, 충청권의 정치연합이었다. 둘째, 권위주의 세력이 민주화운동 세력 일부를 품어 안았다. 점진적 민주화의 내적 동력을 확보했다. 셋째, 권위주의 세력이 주도한 다수파 정치연합의 대표 사례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화 세력은 오히려 정치적 수세에 몰리게 된다. 선거를 해도, 소수파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민주당 계열의 의석수 비율은 1992년 총선에서 32.5%(97석), 1996년 총선에서 26.4%(79석), 2000년 총선에서 42.1%(115석)였다. 3당 합당 이후, 민주당의 의석점유율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정도였다. 2000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40% 이상의 비율을 갖는다.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을 통해 1997년 대선에서 승리했기에 가능했다.


‘세대 구도’의 부상, 노무현에 대한 미안함 & 복지정책의 결합

1990년 이후 한국 정치는 ‘3당 합당 구도’가 지배했다. 3당 합당 구도를 허물기 위한 시도는 대선에서 두 번 이뤄진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ㆍ김종필의 DJP연합이 성공한다. 역시 지역연합으로, 지역연합에 맞불을 놓은 경우다. 2002년 대선에서는 부산 출신 노무현 후보를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세대 구도’가 전면에 등장한 시점이다.

그러나, 3당 합당 구도는 총선에서는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3당 합당 구도의 건재를 보여주는 지표는 부울경(부산ㆍ울산ㆍ경남) 지역에서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압도적 우위다. 부울경 지역에서 3당 합당 구도는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슈가 커졌을 때조차 건재했다.

2004년 탄핵 역풍으로, 민주당 계열(당시 열린우리당)은 2004년 총선에서 반짝 승리한다. 이후 모든 선거에서 연전 연패한다.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모두 역대 최악의 참패를 당한다.

2004년 총선을 정점으로 민주당은 깊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그리고, 반등이 시작된다. 민주당 반등은 크게 세 가지 동력으로 이뤄진다. 첫째,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다. 둘째, 복지정책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전국적 쟁점이 된다. 이후, 한국 정치는 보수정당 계열마저 복지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셋째, 2040세대 구도의 부상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복지정책, 2040세대의 부상. 세 가지 키워드는 실제로는 맞물려서 작동됐다. 당시 2040세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복지정책을 적극 찬성했다. 두 가지가 결합돼 ‘세대 구도’를 만들어낸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은 민주당 입장에서 최악의 선거였다. 반대로,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은 민주당의 전성시대를 상징한다. 그래프는 2007년과 2017년 대선, 2008년 총선과 2020년 총선에서 세대별 투표율 상승을 보여준다. 먼저, 2007~2017년 대선을 살펴보자. 세대별 투표율 상승을 보면, 전체 평균은 14.2%포인트다. 평균을 상회하는 세대는 20대(29%포인트)와 30대(19.3%포인트)다. 20대와 30대가 전체 투표율 상승을 견인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번에는, 2008~2020년 총선을 살펴보자. 전체 평균은 20.1%포인트다. 전체 평균을 상회하는 세대는 역시 20대(30.2%포인트)와 30대(21.9%포인트)다. 40대 투표율도 15.6%포인트 올랐다. 그런데 20대(30.2%포인트)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의 상승이다.


2024년 총선, ‘세대 구도 뜨면’ 진보 유리, ‘세대 구도 퇴각하면’ 보수 유리

각종 여론조사에서 4050세대는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최근까지 민주당 전성시대는 4050세대의 힘만으로 된 게 아니다. 2030세대의 합류가 결정적이었다.

한국 정치사에서 정치적 균열 축은 ①민주 대 반민주 구도 → ②지역구도 → ③세대구도로 변했다. 그러나, 앞의 것이 사라지고, 그다음 것이 등장한 게 아니다. 앞의 것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다음 것의 비중이 더 커진 경우였다.

‘세대구도’가 약화되면 ‘지역구도’가 다시 부상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2030세대에서는 지역구도가 약하다. 그러나, 506070세대에서는 여전히 지역구도는 강력하다.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다시 투표율이 낮아졌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세대별 투표율은 20대 36.3%, 30대 37.8%를 기록했다. 반면, 60대 70.5%, 70대 75.3%를 기록했다. 2030투표율은 6070투표율의 절반에 불과하다.

2022년 지방선거 투표율의 재하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024년 총선에서, 2030세대 투표율이 낮아질 가능성을 암시한다. ‘세대구도’의 상대적 약화와 ‘지역구도’의 재부상 가능성을 암시한다. 투표율 구도 자체가 민주당에 불리하고 국민의힘에 유리할 가능성을 암시한다.

민주당이 ‘전통 지지층’에 안주하며 ‘수박사냥 놀이’나 하게 된다면, 1990년 3당 합당 구도가 다시 부활해서 민주당을 심판하게 될 수 있다. 2030세대의 투표율, 이들이 2024년 총선 승패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