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개무량합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드디어 외삼촌의 영원한 집을 마련하게 됐네요.”
한국 근현대 조각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권진규(1922~1973)가 서울 관악구에 ‘영원한 집’을 마련했다. 올해부터 조각 전문 미술관으로 운영되는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1층에 권진규의 상설전시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7일 남서울미술관에서 만난 권진규씨의 조카 허정회(71)씨는 작품들을 돌아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를 맡은 허경회(69)씨의 큰형이다. 허정회씨는 어린 시절 외삼촌의 성북구 동선동 아틀리에(작업실)에서 석고를 개는 심부름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역사성이 있는 공간에 외삼촌의 집을 마련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올해 96세이신 어머니의 오래된 소원을 해결한 것”이라고 기뻐했다.
‘비운의 천재 조각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권진규는 테라코타와 건칠(옻칠 기법)을 바탕으로 한국 조각사에 이름을 남긴 독특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지원의 얼굴’(1967년)로 대표되는 여성 흉상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생전에 그의 작품은 기대만큼 미술계에서 인정받지는 못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허정회씨는 “외삼촌이 사회 활동을 하셔야지 작품이 팔릴 텐데 그렇지도 않았고, 또 당시에는 구상보다는 추상이 인기가 있었던 시절이라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다”고 돌아봤다.
권진규 유족 측은 권진규미술관을 세우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미술관을 짓겠다는 약속을 받고 권진규가 고등학교를 다닌 춘천의 지역 기업에 작품들을 양도했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소송전을 벌인 끝에야 작품들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허정회씨가 말한 ‘우여곡절’이다. 이후 2021년 7월 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이 서울시립미술관에 총 141점의 작품을 기증하면서 결국 남서울미술관에 상설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남서울미술관은 대한제국 시절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된 건물(사적 제254호)로 층고가 높은 고풍스러운 공간이다.
남서울미술관은 이달 1일부터 문을 연 권진규의 상설전에 ‘권진규의 영원한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번 전시에는 ‘새로운 조각’ ‘오기노 도모’ ‘동등한 인체’ ‘내면’ ‘영감’ ‘인연’ ‘귀의’의 7개 소주제로 작품들을 나눠 전시한다. 대다수는 2022년 열렸던 권진규 탄생 100주년 회고전 ‘노실의 천사’에 나왔던 작품이지만 '자소상' 등은 새로 전시하는 작품들이다.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는 권진규의 유족들이 진행하는 특별 도슨트 프로그램 ‘나의 외삼촌, 권진규’가 진행된다. 허경회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동선동 아틀리에에서 남서울미술관까지 지하철로 50분 거리인데 여기까지 오는데 50년이 걸렸다. 이 작품들은 제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의 것"이라면서 "많은 분들이 금전적으로도 도와주셔서 이렇게 상설관이 생기게 됐다. 앞으로 남서울미술관이 권진규 작품들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라고 전했다. 관람료는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