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이 석방 하루 만인 8일 출근했다. 보석 결정에 강하게 반발한 유족들은 출근 저지에 나섰으나, 구청 인근에 사는 박 구청장은 유족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새벽에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이날 박 구청장 복귀 반대 기자회견을 한 시간 앞둔 오전 8시부터 용산구청에 집결했다. 하지만 박 구청장이 사람들 시선을 피해 새벽에 출근한 사실이 알려지자, 유족들은 울분을 토하며 청사 9층 구청장실로 향했다.
유족들은 구청장실 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를 저지하는 구청 직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실랑이 도중 집무실 바깥문이 열렸지만 중문이 굳게 닫혀 있어 유족들은 박 구청장을 대면할 수 없었다. 공황장애 등을 보석 사유로 제시한 박 구청장은 석방 하루 만에 출근을 하고도 유족들에게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유족들은 “즉각 사퇴하라” “박희영 나와라”를 외치며 항의하다 문 앞에 ‘사퇴요구문’을 붙여 놓고 오전 8시 50분 철수했다.
유족들은 박 구청장의 행태에 강한 분노를 표시했다. 유족 김남희씨는 “박 구청장은 이태원 참사에 마음의 책임을 느낀다면서 어떻게 참사 관련 트라우마로 보석을 신청할 수 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송진영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권한대행은 “박 구청장이 재난 및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업무상 책임을 다하지 않아 159명이나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부실 대응을 은폐하려고 현장 도착 시간을 조작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자신은 할 일을 다했다며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박 구청장은 전날 법원에서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지면서 지난해 12월 구속된 지 5개월 만에 석방됐다. 유족들이 구치소 앞에 몰려가 항의했으나 사과 한마디 없이 굳게 입을 다물었고, 유족이 차량을 가로막자 다른 차량을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박 구청장은 보석을 청구하며 참사 직후 충격과 스트레스, 수감 후 공황장애와 불안, 악몽, 불면 등을 호소했다. 재판부는 주거지 제한과 보증금 납입 등을 보석 조건으로 걸었다.
결국 박 구청장은 석방되자마자 구청장 직위를 회복했다. 건강이 악화됐다는 주장이 무색하게 8일 정상 출근하겠다고도 했다. 김선수 부구청장의 구청장 권한대행 체제도 즉시 종료됐다. 송진영 유가족 대표 권한대행은 “박 구청장은 다시 출근해 용산구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겠다고 한다”며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욕심을 버리고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