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96년 전통의 서점 기노쿠니야의 도쿄 신주쿠 본점. 3층 ‘중국·한국’ 코너엔 몇년 전까지 이른바 '혐한' 서적이 많았다. 2015년 만화 ‘혐한류’가 누적 판매 100만부를 돌파하며 시장성이 확인되자 한국을 일방적으로 비하하는 책이 우후죽순 출간됐다. 한일관계가 극도로 악화한 문재인 정부 시절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7일 같은 코너를 찾아가 봤다. 혐한 서적은 보이지 않았다.
1층 잡지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극우 월간지들도 ‘한국 때리기’에 흥미를 잃은 듯했다. “한국인들은 거짓말쟁이 뇌를 가졌다”, “문재인이야말로 오염수다” 등의 기사가 잡지 ‘WiLL’, ‘하나다’ 등의 표지를 장식한 문재인 정부 때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한일관계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혐한 콘텐츠의 시장성이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혐한 서적이 구석으로 밀려난 사이 한국 문학 바람은 더 강해졌다. 2층 ‘해외문학’ 코너엔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조우리 작가의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등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소설들이 진열돼 있었다.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 이진 작가의 '기타 부기 셔플' 등은 표지에 제목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한국 문화를 접하며 한글에 익숙해진 독자가 늘어나면서 최근 한국 문학책에 한글을 디자인 요소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한국 문학 바람은 2018년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소개되며 시작됐다. 한국 문단에서 페미니즘 소설이 쏟아져 나올 때다. 일본의 성차별 문화에 지친 일본 여성 독자들 사이에 한국의 여성 작가 팬덤이 만들어졌다.
일본의 한국 서적 전문 출판사 ‘쿠온’의 김승복 대표는 "한국 책에 대한 일본 출판계의 관심은 페미니즘 소설, 치유 에세이 등에 한정돼 있었지만,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이달 14~18일 도쿄에서 열리는 서울도서전을 앞두고 한일 출판인 교류 행사를 진행했는데, '쇼가칸' 등 일본 출판사 여러 곳이 참가했다”면서 “한국 책에 대한 관심이 넓고 깊어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