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우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지난달 23일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 ‘미국과 중국 공산당의 전략적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미 상무부에 촉구한 메시지다.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제품 판매를 금지하는 제재안을 발표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 몫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압박한 것이다.
갤러거 위원장과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은 지난 2일엔 조금 더 노골적인 메시지를 발신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 마이크론의 몫을 차지한다면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에서 1년간 예외 적용을 받았던 한국 기업에게서 특혜를 빼앗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미국의 경제안보 압박은 이것만이 아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ㆍ과학법을 중심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쥐어짜기는 심해지고 있다.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를 미국 본토로 싹쓸이해 가면서도 ‘메이드 인 아메리카’ 보호주의 장벽은 겹겹이 쌓고 있다. ‘70년 안보 동맹을 대우하는 게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한국 쪽에서 나오는 이유다.
이렇게 한국 멱살을 잡고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도 실용 노선을 버리지는 않았다. 중국을 제1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동맹과 우방을 규합해 군사ㆍ경제 포위망을 구축하겠다던 미국이 지난 4월부터 꺼낸 용어가 ‘디리스킹(de-riskingㆍ위험 회피)’이다. 중국 때리기를 멈추지는 않겠지만 일정 부분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미국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장 미국의 대중국 외교 실무 책임자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4일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미국 외교 수장의 조기 방중설도 나오고 있다.
결국 한국 외교가 취해야 할 노선은 편가르기를 피하는 방향이다. 도랑에 자리한 소는 동쪽 둑길 잘 자란 미국 풀을 주로 먹어야 하겠지만, 서쪽 둑의 못난 중국 풀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미중 경쟁이 관리 모드로 들어갔는데도 미국 줄서기에만 치중할 경우 한국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정확한 판단과 상황 관리가 중요해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