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카호우카댐을 폭파해 무자비한 '홍수 테러'를 일으킨 것은 누구일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서로를 손가락질하는 가운데 러시아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우선 댐 붕괴로 드니프로강 주변 지역이 대거 침수됐는데 이로 인해 당장의 이득을 보는 건 러시아다. 러시아에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 작전이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댐 바깥에서 포탄을 쏜 게 아니라 내부에 폭발물을 설치해 터진 것으로 보인다"는 공학 전문가들 분석도 러시아 배후설을 뒷받침한다. 드니프로강 하류에 있는 카호우카댐은 러시아 점령 지역이다. 러시아군의 방어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을 저지하기 위해 댐을 폭파했을 가능성이 있다.
7일 미국 AP통신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댐이 폭파된 지 하루가 지난 이날 주변 지역은 전체가 초대형 수몰 지구처럼 보였다. 우크라이나는 최대 80개 마을이 침수되고, 피해자 규모가 4만2,000명에 달할 것이라 전망한다. '잠정 추산'이라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럽연합(EU)은 댐 폭파가 러시아 소행이라고 확신한다.
①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대반격 방해 전략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땅이 침수되고 질어지면 우크라이나 전투 차량 등이 점령지를 향해 진격하기 어렵다. 병력도 재배치해야 한다. 서방에서 지원받은 각종 첨단 무기를 앞세운 우크라이나군을 막아야 하는 러시아로선 일단 시간을 버는 것이다. 뮌헨안보회의 회원 니코 랑게는 독일 ZDF 인터뷰에서 "댐 폭파로 우크라이나 공세의 추진력이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댐 파괴는 적의 진군을 막는 전쟁의 단골 전략이다. 드니프로강 중류에 있는 드니프로댐은 1941년 나치 독일 침공을 받은 소련에 의해 파괴됐고, 2년 뒤 퇴각하던 나치 독일에 의해 다시 파괴된 바 있다.
②러시아의 방어 능력 부족을 방증한다는 시각도 있다. 침수 지역에서 전투가 멈춘 사이 러시아는 병력이나 무기를 다른 지역에 보내 또 '병력 돌려 막기'를 할 수 있다. 독일 싱크탱크 독일외교협회 소장 크리스티안 묄링은 독일 타게스샤우 인터뷰에서 "러시아엔 군사적 선택지가 많지 않다. (댐 폭파는) 러시아의 군사적 빈약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③대반격에 대한 경고 성격도 짙다. 이번 댐 붕괴는 인명·재산 피해뿐 아니라 핵 위협도 고조시켰다.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이 드니프로강에서 냉각수를 끌어다 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고문을 지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는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전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억제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신중하다. 6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언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진 결론을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개입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가 뒤집힌 사례가 반복된 것이 미국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9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노르트스트림 해저가스관이 폭발했는데, 당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미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가 노르트스트림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첩보를 입수해 양국 신뢰에 다소 균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