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은 '죄악의 소굴'"… 구약성서 읊으며 유부녀만 죽인 '바이블 존'

입력
2023.06.09 10:00
24면
<59> 스코틀랜드 '배로랜드 볼룸' 연쇄 살인사건
성경 인용하며 대화... 글래스고 유부녀 3명 교살
스코틀랜드 최초로 범인 몽타주 작성해 검거 나서
55년째 행방 묘연… "스페인서 살고 있다" 주장도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1968년 스코틀랜드 최대 항구도시 글래스고의 늦겨울은 유독 우울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연중 170일 이상 비나 눈이 내리는 곳이 글래스고다. 겨울이면 글래스고는 특유의 짙은 회색이 도시 전체에 내려앉곤 했다. 별다른 유흥 거리도 없는 겨울밤, 회색 도시에 생동감이 남아 있는 곳은 도심의 몇몇 댄스 클럽뿐이었다.

그 당시 글래스고의 클럽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배로랜드 볼룸'이었다. 특히 매주 목요일 밤 25세 이상만 입장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배로랜드 사교 행사장'은 인파로 가득했다. 나이만 확인되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클럽에서 술을 마시고 자유롭게 춤출 수 있었기에 배로랜드는 그 시대 글래스고 성인 남녀의 '해방구'로 기능했다.

글래스고의 간호사 패트리샤 도커(25)도 그해 2월 22일 목요일, 배로랜드 클럽으로 향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멀어져 힘들어했던 도커는 "스트레스를 풀고 싶다"는 말을 부모에게 남긴 후 집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도커는 다음 날 아침 자택 차고 문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얼굴은 둔기에 맞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손상됐고, 성폭력을 당한 흔적도 뚜렷했다. 부검을 맡은 길버트 포브스 글래스고 의과대학 교수는 "피해자는 목이 졸려 사망(교살)했으며, 사건 당일 생리 중이었다"고 밝혔다.

반복된 성폭행·교살·둔기 사용… 용의선상엔 '바이블 존'

도커 피살 사건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마지막 목격 장소가 사람들로 붐볐던 배로랜드 클럽이었기에 도커가 만났거나 클럽을 떠날 때 동행했던 인물에 대한 진술은 중구난방이었다. 시신 발견 현장에서 없어진 건 도커의 핸드백이 유일했고, "23일 새벽 '날 내버려 둬'라는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는 동네 주민들 진술로는 범인을 특정할 수 없었다.

수사의 활로가 뚫린 건 같은 유형의 살인 사건이 다시 발생한 이후였다. 도커가 살해된 지 1년 6개월가량 흐른 1969년 8월 17일, 세 아이의 엄마였던 제미마 맥도널드(31)가 글래스고의 한 아파트 지하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교살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맥도널드 역시 얼굴에 둔기로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고, 생리 중이었으며, 핸드백만 없어졌다. 누가 봐도 동일범의 소행이었다.

스코틀랜드 경찰은 즉시 배로랜드 클럽을 떠올렸다. 맥도널드도 목요일이었던 전날(8월 16일) 밤 배로랜드 클럽의 사교장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행히 이번엔 목격자 진술이 나왔다. "약 182㎝의 키에 날씬한 체형, 짧은 갈색 머리, 그리고 대화 중 성경(Bible) 구절을 계속 인용하는 습관이 있는, 자신을 존(John)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맥도널드와 함께 있었다." 역대 스코틀랜드 최대 미제 사건의 용의자, '바이블 존'이 처음으로 수사선상에 오른 순간이었다.

바이블 존 "클럽에서 수십 개 죄악이 만들어진다"

바이블 존은 그러나 경찰보다 기민하고 빨랐다. 경찰이 희미하게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무렵인 1969년 10월 31일, 한 아이의 엄마였던 헬렌 퍼톡(29)의 시신이 글래스고 한 아파트의 뒷마당에서 발견됐다. 범죄 동선과 흔적은 이번에도 동일했다. 퍼톡 또한 목요일이었던 10월 30일 배로랜드 클럽을 방문했고 △성폭행 후 교살 △얼굴 구타 △생리 중 △핸드백 분실 정황도 일치했다.

다만 퍼톡 사건의 경우, 동행자가 존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퍼톡의 지인인 진 랭퍼드는 10월 30일 배로랜드 클럽에서 퍼톡과 함께 존이라는 남성과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랭퍼드에 따르면, 존은 구약성서 구절을 계속 인용하면서 "배로랜드는 '죄악의 소굴'"이라고 강조했다. "아버지(신)는 댄스홀(클럽)을 수십 개의 죄악이 만들어지는 곳이라고 믿고 있다"는 설교를 이어 간 존은 "결혼한 여성들이 배로랜드 클럽을 방문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거듭 날을 세웠다고 했다.

랭퍼드는 존, 퍼톡과 함께 10월 31일 새벽 귀가했다. 집이 가까워 먼저 작별 인사를 나눈 그는 "퍼톡을 데려다주고 가겠다"는 존의 말을 별다른 의심 없이 믿었다. 그리고 존은 같은 날 오전 2시, 글래스고의 클라이드강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모습이 운전기사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짧은 갈색 머리·맞춤형 정장… 좁혀진 경찰 수사망

스코틀랜드 시민들은 연쇄살인 정황을 파악하고도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을 질타했다. 궁지에 몰린 경찰은 그 당시로선 획기적인 '용의자 몽타주'를 그리기로 결정했다. 바이블 존의 몽타주는 레녹스 패터슨 글래스고 예술대 교수가 랭퍼드의 진술에 근거해 완성했다. 그림에는 '짧은 갈색 머리' 등 2차 살인 사건 당시 확보한 진술에다 '맞춤형 정장을 입고 고급 담배를 피우는 25~30세 남성'이라는 이미지도 추가됐다.

'뒷북' 수사는 역대급 규모로 진행됐다. 배로랜드 클럽을 중심으로 글래스고 내 복수의 사교장에 형사 16명이 돌아가며 잠복했고, 100명 이상의 형사가 이 사건에 전담 배치됐다. 형사들은 바이블 존과 같은 헤어스타일의 남자를 특정하기 위해 배로랜드 클럽 인근 이발소 450여 곳을 탐문했다. 또 글래스고의 모든 치과 의사를 만나 랭퍼드가 기억해 낸 '앞니가 어긋난 남성'의 진료 기록도 확인했다.

영국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현재까지 바이블 존 사건과 관련해 스코틀랜드 경찰이 수사한 주변 인물은 5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 중 5,000여 명이 용의자로 분류돼 추가 심문을 받았고, 랭퍼드는 경찰이 추린 300여 명을 직접 만나 '존'이 맞는지 직접 확인하기까지 했다.

유일한 목격자 사망… '늙은 존'을 사진만으로 특정?

용의자 체포의 적기를 놓친 수사는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경찰은 3차 살인 사건 직후 '존 화이트'라는 남성을 가장 먼저 범인으로 지목했다. 배로랜드 클럽에서 젊은 여성과 말다툼하던 존 화이트의 생김새가 몽타주와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앞니가 겹쳐 있지 않았고, 퍼톡의 양말에 남아 있던 체액 유전자정보(DNA)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후 1970년대 영국에서 여성 13명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 '피터 셔플리프'라는 인물을 주목했다. 그가 1970년 이전 스코틀랜드를 자주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된 상황에서, 퍼톡의 남편이 "셔플리프가 범인"이라고 계속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년간의 조사 끝에 그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수사가 계속됐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러다 2004년, 경찰은 "14세 소녀 두 명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복역했던 피터 토빈이 바이블 존일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토빈이 1968년 전후 배로랜드 클럽 인근에 거주했고, 복역 전에 가명으로 '존'을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게 핵심 증거였다.

그러나 토빈도 범인이 아니었다. 그의 전 부인은 "토빈은 살인 사건 발생 당시 나와 함께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영국 브라이튼에서 생활했다"는 알리바이를 제공했고, DNA 검사에서도 존과 일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존의 몽타주와 전혀 유사하지 않았다.

55년째 잡히지 않은 바이블 존에 대한 수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최대 미제 사건인 탓에 대중의 관심 또한 여전하다. 바이블 존 사건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작가 돌로레스 레돈도는 지난해 11월 영국 매체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존은 아직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 레돈도는 "자체 조사 결과, 존이 스코틀랜드 경찰을 피해 오래전 스페인으로 도주해 노인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일 순 있다. 하지만 '스페인의 노인 남성' 중에서 존을 특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유일한 목격자' 랭퍼드는 2010년 사망했다. 존도 살아 있다면, 최소 80세가 됐을 것이다. '늙은 존'을 청년 시절 그림과 비교해 찾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버렸다는 얘기다.

정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