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8대가 6일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진입했다. 양국 군용기가 동시에 사전통보 없이 카디즈에 들어온 건 지난해 11월 이후 7개월 만이다. 한미일 공조를 견제하고 북한과 마주한 한국의 방어체계를 떠보려는 중러의 압박성 무력시위로 읽힌다.
합동참모본부는 “오전 11시 52분부터 오후 1시 49분까지 중국 군용기 4대와 러시아 군용기 4대가 남해와 동해 카디즈에 순차적으로 진입한 후 이탈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우리 영공 침범은 없었다. 합참은 “이들 군용기가 카디즈에 진입하기 전부터 식별했고, 공군 전투기를 투입해 우발상황을 대비한 전술조치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군 당국은 중러 군용기의 기종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그간 전례에 비춰 중국의 H-6 폭격기와 러시아 TU-95 폭격기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으로 접근하는 군용기에 대응하기 위해 상공에 설정한 임의의 선이다. 국제법에서 인정하는 ‘영공’은 아니어서 침범 대신 진입이라고 표현한다. 반면 미리 통보하지 않을 경우 우리도 맞서 대응 출격하기 때문에 자칫 무력충돌로 치달을 수 있다.
중국 국방부는 "러시아와 양국군의 연간 협력계획에 근거해 동해와 동중국해 관련 공역에서 제6차 연합 공중전략 순찰을 실시했다"고 공개했다. 특정 대상을 겨냥한 도발이 아닌 정기훈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중러에 맞서 한미일 공조를 역대 최고 수위로 끌어올린 시점에 발생한 카디즈 진입을 단순 훈련으로 보긴 어렵다. 오히려 무력시위 성격이 짙어 보인다. 한미일 정상이 ‘새로운 수준'의 공조를 약속한 데다 3국은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체계를 올해 안에 갖출 방침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껄끄러워하는 대만해협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한미일의 강경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31일 북한의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로 이 같은 양측의 대립구도는 한층 선명해졌다. 한미일은 북한의 도발을 한목소리로 규탄한 반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적대면서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이나 추가 제재 결의안 채택은 불발됐다.
2~4일 열린 제20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도 긴장감은 이어졌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공개연설에서 “일부 국가들이 규칙 기반의 질서를 위반하는 북한의 불법적 행위를 방기하고 있다”며 “책임 있는 국가가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원인”이라고 중러 양국을 대놓고 꼬집었다.
중러 군용기는 이날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2024~2025년 임기) 진출 투표를 불과 12시간 남겨놓고 카디즈에 무단 진입했다. 중러가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한국이 이번에 당선되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지난해 비상임이사국에 진출한 일본과 함께 유엔에서 북한의 도발에 맞서 3각 공조를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북한을 뒤에서 지원하는 중러 양국으로서는 거북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