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UCLA 교수이자 '총, 균, 쇠'의 저자인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몇 해 전 한국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의 만성적 위기로 '여성의 역할'을 지목했다. 그는 1990년대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는데 뛰어난 역량을 가진 여성학자가 '남편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또한 2019년에 방한했을 때는 젊은 여성들 대부분이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의 이러한 상황은 세 가지 측면에서 만성적 위기라고 일갈한다.
첫째는 한국 여성들에게 비극이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국 남성들에게도 비극이다. 여성이 만드는 성과를 남성이 함께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이라는 국가에도 비극이다. 인구의 절반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인구는 5,100만인데 인구 2,550만에 불과한 나라처럼 작동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을 낭비하고는 성장하기 어렵다.
2023년 우리나라가 마주하고 있는 위기 중 하나는 낮은 출산율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5년 연속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꼴찌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아이 수를 뜻하는데, 이는 현재 남녀 20명이 다음 세대에 7, 8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 위험으로 인구 문제를 지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심각한 저출산 국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경제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제이컵 펑크 키르케고르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저출산 원인으로 '성차별' 문제를 지목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여성에게 가사와 육아의 대부분을 도맡을 것을 요구하는데, 이러한 성차별적 문제는 여성들에게 결혼을 '나쁜 거래'라는 인식을 갖게 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출산을 기피하는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 어느 곳보다 높고 커리어 측면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이룬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사와 자녀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이 여성에게만 전가되고 있는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규범과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OECD에서 발표한 '2022년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자녀가 있는 한국 남성은 자녀가 없는 남성보다 고용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자녀가 있는 여성은 무자녀보다 고용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한국인과 중국 교포,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만 참여했던 가사근로 시장이 대폭 확장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이민정책을 대수술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린다. 2060년대 중반까지 매년 이민자가 40만 명씩 유입돼야 노동연령 인구의 급감을 피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성평등'이다. 다수의 유럽 국가가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남녀 간 가사 분담을 더 고르게 하자 출산율이 반등한 바 있다. 성평등은 서로의 파이를 빼앗고 빼앗기는 문제가 아니다. 남성 역시 성 고정관념에 억압받는 성차별의 피해를 입고 있다. 성평등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처한 중대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