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저렴한 보험 추천" '보험의 역설' 해결 위해 인슈어테크 창업한 이동익 해빗팩토리 공동대표

입력
2023.06.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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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받은 온라인 보험설계사들이 AI 이용해 비대면 상담
미국 주택담보대출업에도 진출, 디지털 손해보험사 설립도 추진


지난 3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많은 것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비대면으로 바뀌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은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비대면 세대가 됐다.

그 바람에 젊은 가입자를 늘려야 하는 보험업이 딜레마에 빠졌다. 보험설계사에 의존하는 보험업은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가입자 확대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코로나19 때문에 웃는 보험업계의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있다. 인공지능(AI)을 접목해 보험업에 일대 혁신을 꾀하는 보험기술(인슈어테크) 업체 해빗팩토리다. 이동익(44) 공동대표가 2016년 창업한 이 업체는 '시그널 플래너'라는 AI와 카카오톡을 이용한 비대면 상담으로 젊은 층을 공략해 코로나19 시기에 크게 성장하며 보험업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이 대표를 만나 AI가 바꿔놓는 보험업의 미래를 짚어 봤다.


"비싼 보험 팔아라" 보험의 역설

해빗팩토리는 기존 보험사들의 영업 방식을 혁신하기 위해 등장했다. 기존 보험사들은 보험설계사들에게 의존해 가입자를 모집한다. "240조 원 규모의 국내 보험시장에서 90% 이상을 보험설계사가 만들죠."

문제는 보험설계사들이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것이다. 이들은 가입자를 모집할 때마다 판매 수수료처럼 수당을 받는다. 그래서 보험업계에서는 보험설계사 확대를 고용이 아닌 도입이라고 표현한다. 보험설계사들이 가져가는 수당에 교통비, 식비, 가입자에게 주는 선물비 등이 모두 들어간다. "많은 보험설계사들이 가입자에게 필요한 보험이 아니라 수당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비싼 보험을 권해요. 보험사들도 돈을 벌기 위해 보험설계사들의 이런 행동을 판매왕 제도 등으로 장려하죠."

여기에서 보험의 역설이 발생한다. 보험의 역설이란 가입자의 데이터를 분석할수록 보험사에 불리한 것을 말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오히려 싼 보험이 가입자에게 적합하다고 나와요. 비싼 보험을 많이 팔아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보험사와 맞지 않죠."

월급 받는 온라인 보험설계사 채용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대표는 거꾸로 AI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온라인 보험설계사들이 비대면 접촉으로 보험상품을 추천하는 '시그널 플래너'를 개발했다.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앱)과 웹 서비스로 제공되는 시그널 플래너는 이용자가 원하는 조건을 선택하면 AI가 여러 보험 및 연금상품을 비교해 보험료가 낮은 순서로 보여주고 적합한 것을 고르도록 돕는다. 현재 시그널 플래너의 가입자는 60만 명, 월 이용자는 약 7만 명이다.

상담은 카카오톡 메신저로 문자상담만 하는 보험설계사들이 담당한다. 이 대표는 보험설계사 53명을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보험설계사가 월급을 받는 정규직이 아니면 소득을 올리려고 비싼 보험을 팔 수밖에 없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보험설계사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보험상품을 몇 개를 팔든 상관없이 월급을 주죠. 따라서 보험설계사가 무리해 비싼 보험을 추천하지 않아요."

이 대표에 따르면 보험설계사들은 정규직이 되면서 소득이 올라갔다. "기존 보험설계사들은 1인당 수입 평균이 월 200만 원에 불과해요. 그런데 우리가 고용한 정규직 보험설계사들은 1인당 월평균 530만 원을 받아요."

AI가 온라인 비대면 상담에 관여하는 것도 해빗팩토리의 경쟁력이다. "AI가 고객 상담 내용에 맞는 답변을 제공해요. 따라서 어떤 보험설계사가 답변하든 내용이 똑같죠."

고객 상담은 음성이나 대면이 아닌 카카오톡 메신저를 이용한 문자로 이뤄져 고스란히 자료로 남는다. 이 자료는 AI의 학습 재료가 된다. 또 보험설계사들이 비싼 상품을 추천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근거가 된다. 만약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상담 내용을 분석해 필요 이상으로 비싼 보험을 권유한 것이 확인되면 가입자를 위해 강제해지한다.


AI가 가입자에게 유리한 보험 정보 제공

불편할 수도 있는 문자 상담이 오히려 젊은 층을 확보하는 수단이 됐다. "20·30대 젊은 층은 통화나 직접 만나는 것보다 비대면 상담을 선호해요. 덕분에 기존 보험사들이 잡고 싶어 하는 20·30대 가입자를 대거 확보했죠."

언뜻 보면 쉬워 보이지만 기존 보험사들이 따라 하기 힘든 장벽이 있다. 바로 보험의 역설이 작용하는 고객 데이터 분석이다. "비대면 상담을 하려면 AI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야죠. 그런데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가입자에 따라 비싼 보험보다 싼 보험이 좋다고 나와요. 수당에 의존하는 보험설계사들을 통해 가입자를 모집하는 기존 보험사들은 싼 보험을 권하기 힘들어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AI를 이용해 이용자에게 불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한 것이다. 필요성도 모르고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을 줄이기 위해 AI가 1,000페이지에 이르는 보험 약관을 가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1, 2페이지로 요약해 알려준다. "가입자들이 보험상품 정보를 잘 모르고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바람에 굳이 필요 없는 보험에 가입하죠. 반대로 보험사가 나가는 돈이 많은 실손보험은 보험사들이 판매를 꺼려요. 하지만 우리는 실손보험을 적극 판매해요. 많은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을 팔지 않으려 하는데 우리까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미국 주택담보대출 사업에도 진출

해빗팩토리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생명, 동양생명,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28개 보험사와 계약을 맺은 보험 대리점(GA) 같은 업체다. "손해보험사 전체, 생명보험사 일부와 계약했죠. 지금 보험시장은 무한경쟁이에요. 그래서 기존 보험사들은 하나라도 더 보험상품을 팔려고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하는 우리와도 계약을 맺죠."

보험사가 아니어서 직접 보험 상품을 만들지 못하고 기존 보험사들의 상품을 대신 판매해 수당을 받는다. 수당이 곧 해빗팩토리의 매출이다. "지난해 매출이 100억 원이에요. 올해 매출 목표는 300억 원입니다. 영업이익 전환이 목표죠."

투자는 세마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KB생명 등에서 누적으로 137억 원을 받았다. "100억~200억 원을 목표로 시리즈C 투자 유치를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이 대표는 보험과 연금 외 다양한 금융상품을 다루는 금융기술(핀테크) 기업으로 나아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 규모가 1경5,000조 원으로, 미국 경제의 15%를 차지해요. 매년 신규 금액이 3,000조 원 이상 발생하죠. 그만큼 미국도 집 살 때 대출을 많이 받아요."

이를 위해 지난해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법인을 설립하고 3월부터 '론닝.AI'라는 주택담보대출 중개 서비스를 시작했다. "4,000개가 넘는 미국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중개하는 서비스죠. 미국에서는 대출받으려면 15~30일 걸리는데 우리는 온라인으로 처리해 일주일로 줄였어요. 덕분에 지난해 400억 원가량 대출 중개를 했어요. 올해도 1분기에만 100억 원 정도 대출 중개를 했죠."

미국에서도 카카오톡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한인 시장을 겨냥해 카카오톡 채널로 대출상담 서비스를 시작했죠. 이제 카카오톡 대신 미국의 일반 메신저로 전환해 가입자를 늘려야죠."

이 대표는 이를 주택담보대출은행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은 주택담보대출은행이 따로 있어요. 1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주택담보대출 은행 사업권을 신청했죠. 사업권이 나오면 하반기에 주택담보대출 은행으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대학 때 들은 수업이 진로 바꿔

이 대표는 성균관대 경영학과 1학년 때 들은 교양과목 전산학개론 때문에 진로를 바꿨다. "대학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는데 전산학개론에서 유일하게 A+ 학점을 받았어요. 이를 계기로 삼성SDS 멀티캠퍼스에서 6개월 동안 프로그래밍을 배웠죠."

덕분에 대학 졸업 후 2008년 LG유플러스에 취직해 5년간 개발자로 일했다. "당시 통신을 뛰어넘는 탈통신이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했어요. 그러면서 금융과 통신을 결합하는 사업에 관심을 가졌죠."

마침 정보기술(IT) 융합전문가를 찾던 메리츠화재로 2012년 이직했다. "5년간 보험업무 전반을 IT로 혁신하는 일을 맡았어요. 당시 발견한 보험의 문제점이 거꾸로 창업 계기가 됐죠."

그가 보험업의 문제로 본 것은 고객 발굴에 과도하게 들어가는 비용이다. "보험사들은 가입자를 늘리려고 보험설계사에게 장려금(리베이트)을 줬어요. 장려금 때문에 가입자가 높은 보험료를 내죠. 이를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했어요."

2016년 현재 회사를 창업한 이 대표는 처음에 '시그널 가계부' 서비스로 시작했다가 보험과 연금 사업으로 확대됐다. "창업 후 1년 반 뒤 유저스토리랩을 창업한 정윤호 공동대표를 영입했죠. 제가 사업을 총괄하고 정 대표는 서비스를 맡죠."

앞으로 그는 보험사를 설립하고 증권과 신용카드 사업까지 진출할 계획이다. "저렴한 보험상품을 만드는 디지털 손해보험사를 설립하기 위해 몇몇 금융지주사들과 논의 중입니다.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봐요. 또 이용자가 어떤 신용카드를 많이 쓰는지 분석해 맞춤형 카드를 추천하는 사업도 계획 중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