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5인회' 발언으로 촉발된 실세론에 대해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김기현 대표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밝힌 데 이어 해당 발언을 한 이용호 의원이 지난 2일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하면서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도부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실세론을 포함한 내홍은 또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0일 CBS 라디오에서 "최고위원회의가 아닌 중요한 핵심 의제 결정을 하는 다른 곳이 있다"며 5인회를 지목한 것이 이번 논란의 발단이었다. 여권에서는 김 대표가 매일 오전 비공개로 당내 현안을 논의하는 사전전략회의에 참여하는 이철규 사무총장, 박대출 정책위의장,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배현진 조직부총장,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 등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대선을 전후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논란에 따른 한바탕 내홍을 치르면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이어왔다. 5인회 발언은 지난 3월 전당대회를 통해 김기현 대표를 선출했음에도 사실상 당이 실세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반영된 지적이었다.
'5인회' 발언의 당사자인 이 의원이 발언을 철회했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견해가 다수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의원은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게 이번 사태의 핵심"이라며 "지도부가 계속 중심을 잡지 못하면, 그때는 '5인회' 논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당 전체가 리스크에 휩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도부가 지금처럼 '식물 최고위'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실세 논란은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9일 예정된 최고위원 보궐선거에 현역의원들 사이에서 출마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고위에 입성한들 들러리에 그칠 바에야 재선 등 내년 총선을 노리는 게 낫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더욱이 '원외 3파전'으로 치러지는 최고위원 보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초선·원외' 위주의 최고위가 향후에도 존재감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오는 10월쯤 진행될 전망인 당무감사에서도 실세론이 재현될 수 있다. 당무감사는 각 지역 당협위원장들의 경쟁력을 점검하는 절차이면서도 총선에 앞서 사실상 공천의 사전 심사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지도부의 미미한 존재감과 실세들의 영향력이 이어질 경우, 당무감사 결과를 명분으로 현역의원들에 대한 물갈이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김 대표가 지난 2일 전국 당협위원장 워크숍에서 '검사 공천' 가능성을 일축하며 "유능한 사람이 공천되도록 시스템 공천을 확립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러나 영남권 한 중진의원은 "그동안 당무감사는 핑계일 뿐 물갈이를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감사에서 공정성 문제가 제기되면 반발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