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쇄신을 놓고 집안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내홍이 가열될 조짐이다. 특히 친이재명(친명)계 지도부인 정청래 최고위원을 행정안전위원장에 내정하자 계파 간 대결로 확산될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21대 국회 남은 임기 동안 민주당 몫으로 배정돼 위원장 교체를 앞둔 상임위는 △행안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보건복지위 △환경노동위 △교육위 △예산결산특별위 6곳이다. 당초 정청래·박범계·한정애·김경협·박홍근·우상호 의원이 후보자로 내정됐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본회의에서 투표로 선출절차를 마치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당내 반발에 인선이 무산됐다.
반대 측은 내정자들이 과거 원내대표, 장관 등 요직을 맡았는데 국회 상임위원장까지 차지하는 건 과욕이라고 지적했다. 박홍근·우상호 의원은 원내대표, 박범계(법무부)·한정애(환경부)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 김경협 의원은 21대 전반기 국회 정보위원장을 거쳤다. 정 최고위원은 핵심 당직자라는 점에서 과방위원장 시절부터 겸직 논란이 불거진 상태다. 이에 사흘 전 본회의 직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다수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당내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많다. 지도부 소속 한 의원은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등 일련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당의 원칙이 없다'는 불만들이 목구멍까지 쌓여 왔는데, 상임위원장 인사가 트리거(방아쇠)가 됐다"고 평가했다. 지도부나 장관직을 맡지 않은 3선 이상 의원 가운데 나이순으로 선출해 왔던 오랜 불문율까지 훼손된 것은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전날 YTN 라디오에서 "예전에는 대변인 등 보직을 맡으면 상임위원장은 물론 간사조차 못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은 '짬짬이' 느낌이 난다"면서 "당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당내 여론이 악화하자 내정자 대다수는 위원장직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정 최고위원은 "행안위원장 자리를 기필코 사수하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1일 페이스북에 "정청래가 물러나면 다음 타겟팅(타기팅)은 이재명 대표와 지도부다. 지도부의 입술이 되어 잇몸을 보호하겠다"라고 썼다. 자신을 겨냥한 비토 여론을 비이재명계의 공세로 해석한 것이다.
민주당 청원게시판에는 정 최고위원의 내정을 호소하는 글에 4만5,000여 명이 동의했다. 이를 두고 한 비명계 의원은 "당 기득권을 타파하자며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득권 보호에는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최근 '개딸' 등 강성지지층과의 절연 문제와 대의원제 폐지 여부 등 혁신과제를 놓고도 내분을 겪고 있다. 상임위원장 인선 문제가 봉합되지 않을 경우 당의 분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이에 원내지도부는 상임위원장 후보자 선정을 위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 다시 선출하기로 한발 물러섰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지도부 워크숍에 참석한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다음주쯤 (새 기준에 관해) 의원들의 의견이 모이면 의원총회 형식을 빌어 동의를 구하게 될 것"이라며 "상임위원장을 한 번에 다 선임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본회의가 예정된) 12일에 선출은 좀 어려울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상임위원장 출신 한 중진의원은 "3선 이상 의원 중에서 적임자가 없다면 재선 의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