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과' 흉부외과 살리려면... "인상된 수가를 인력 충원 등에 제대로 써야"

입력
2023.06.02 16:30
흉부외과학회 학술대회 '필수의료' 토론


이번에 오른 대동맥·소아심장 수술 수가도, 흉부외과 가산금도 마찬가지지만, (늘어난 재정 중) 인력이나 (의료)장비, 수입(의료진 처우 개선)에 투입되는 비율이 의무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어서 병원마다 너무 제각각입니다. 올린 수가가 병원 수입만으로 가면 안 되고, 실질적으로 흉부외과(의료진)에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정재승 고려대 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보험위원장

사람 몸에서 가장 큰 혈관인 대동맥이 찢어졌을 때, 갓 태어난 아기에게 심장기형이 발견됐을 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 상황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환자를 멱살 잡고 이 세상으로 끌어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흉부외과 전문의다. 그들은 폐, 심장, 대동맥 등 생명과 직결된 장기를 수술하는 의사들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선 그저 멋진 ‘참의사’가 모인 곳으로 그려지지만, 실상은 (상대적) 저임금과 중노동에 시달리는 '기피과'의 대명사다. 흉부외과 학회 조사에 따르면 전문의 절반 이상(51.7%)이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한다. 노동 강도는 높은데 처우는 열악하니, 젊은 의사들이 오지 않는다. 매년 새로 배출되는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2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소아심장 수술을 할 줄 아는 의사는 전국에서 20명 수준으로 '멸종 단계'다.

위기에 처한 흉부외과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가 2일 춘계학술대회를 열어 '필수의료로서의 흉부외과와 그 정책 방향'이라는 주제로 기획세션을 열었다. '의사 캐슬 3058' 기획기사로 필수의료 붕괴 실태를 취재한 본보 최나실 기자도 패널로 참석했다.

정부 "흉부외과 수술 보상 확대하겠다"

흉부외과의 수술 난이도와 노력에 비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근본 원인인 의료 수가(국가가 정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가격)에 관심이 집중됐다. 보건복지부는 이달부터 대동맥·소아심장 수술에 대한 수가를 인상한다. 예를 들어 대동맥 안쪽이 찢어지는 '대동맥 박리증' 수술은 전문의, 전공의, 전담간호사, 체외순환사 등 10여 명에 달하는 의료진이 최소 6~7시간, 길어지면 12시간 이상 훌쩍 넘겨가며 진행하는 고난도 수술이다. 하지만 발생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그간 제대로 된 수가 책정이 되지 못했는데, 정부가 학회 요청을 받아들여 기존보다 139% 인상하기로 했다.

정부는 수가 현실화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조영대 복지부 보험급여과 사무관은 이날 '대동맥 및 소아 수술 수가 정책의 변화와 지향점' 발표에서 "고난도·고위험 수술 분야에 대해서 업무 강도나 자원 투입 수준을 반영해, 기본적인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수준의 수가 인상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사 위기'에 몰린 소아심장 수술 분야의 수가도 일부 개선된다. 박천수 서울아산병원 교수(대한소아심장학회 보험이사)는 "소아(심장) 분야의 수가 분류체계를 새로 만들려는 이유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아심장 수술이 얼마나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고 그 때문에 정책적 변화를 이끌어 낼 근거 자료도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올린 수가 병원이 다 가져가면 어쩌나

다만 정부가 이렇게 수가를 올려봐야 병원의 수익으로 귀결될 뿐이지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그 과실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높은 게 사실이다. '위기의 흉부외과'를 살리기 위해, 이미 2009년부터 의료행위별로 20%에서 100%까지 추가로 수가를 가산하는 '가산금' 제도가 운영됐다. 그러나 정재승 교수 지적처럼 가산금이 실질적으로 흉부외과 의료진의 처우 개선이나 인력 충원에 오롯이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부가 수가를 개선해줘도 병원장이 다 해먹고, 인력 충원은 안 하고 (기존 인력만) 갈아먹을까봐 걱정입니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 취재에 응한 한 흉부외과 전공의

정부도 이런 점을 알고 있기는 하다. 조영대 사무관은 "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에서 (가산금이) 대학병원 스텝(staff) 충원이나 전공의 인력에 대한 보수로 쓰이는지 모니터링은 하고 있으나, 이 문제는 학회와 개별 병원의 경영자 입장이 충돌하는 부분이기도 해서 전문가 그룹의 지속적 관심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환자단체에서는 상대적으로 수술 빈도가 낮은 지방 의료취약지에도 흉부외과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서 별도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는 "전반적인 정부의 공공정책수가 방향에 동의하지만 흉부외과처럼 공급이 부족한 의료 분야도 대도시와 지방에 차이가 분명히 있다"면서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 중 흉부외과 가산금 절반 가량을 서울 소재 상위 4개 병원에서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술 건수 자체가 서울 주요 대형병원에 집중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윤 대표는 "현행 지원 방식이 지방 의료취약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효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최소한의 (의료)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은 지역들은 행위량(수술 빈도 등)에 상관없이 지원해서 안정적 수입을 보장해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최나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