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이버가 고소를 당했다. 고소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박경식 비뇨기과병원장이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폭로했던 이다.
70대 노의사가 네이버를 고소한 이유는 네이버 밴드 때문이다. 전화로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박씨는 2018년 네이버에 의료용 및 회고록 집필을 위한 자료를 저장하려고 남들이 볼 수 없는 비공개 밴드를 개설했다. 그런데 여기 저장된 성의학 관련 자료를 네이버에서 청소년 유해물로 판단해 사전 예고 없이 밴드를 강제 폐쇄하고 일부 자료를 폐기한 뒤 주인도 접근할 수 없도록 이용자 계정을 영구 정지시켜 버렸다. 그 바람에 박씨는 하루아침에 중요한 자료를 잃고 말았다.
쟁점은 두 가지다. 개설자인 박씨 외에 누구도 볼 수 없는 비공개 밴드에 올린 자료의 유해성 여부와 개인 재산권 침해 여부다. 유해성이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인데, 남이 볼 수 없는 비공개 밴드의 경우 유해성이 성립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네이버에 물어보니 과거 경기 성남 중원경찰서로부터 아동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해 청소년 유해물을 강력하게 모니터링하라는 권고를 받고 비공개 밴드의 콘텐츠도 유해하다고 감지하면 차단한다는 답변이었다. 비공개 콘텐츠까지 차단하는 이유는 공개로 전환되면 문제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부분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쉽게 말해 집에 칼이 있다고 예비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어나지 않은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할 수 없다.
더불어 네이버는 유해 콘텐츠 차단을 위해 비공개 밴드도 들여다보고 삭제 및 폐쇄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조항이 이용자 약관에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밴드는 네이버 서비스이지만 그 안에 저장된 자료는 개인 재산이다. 이를 임의처분하는 내용을 약관에 반영한 것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금지하는 이용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불공정 약관 논란이 일 수 있다.
이처럼 네이버가 과도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사업자에게 지나치게 자율 규제를 맡기기 때문이다. 방통심의위는 방송이나 통신 서비스 콘텐츠의 유해 여부를 따져 제재하는 곳이다. 그런데 일일이 들여다볼 수 없으니 이를 사업자 자율 규제에 맡긴다. 최근 방통심의위는 논란이 된 디씨인사이드의 우울증 갤러리도 강제 차단하면 재량권 남용이 되니 사업자 자율 규제에 맡긴다며 손을 놓았다.
언뜻 들으면 자율 규제가 좋은 것 같지만 경우에 따라 이용자나 사업자 모두에게 독이 된다. 사업자는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필요 이상의 과도한 규제를 하게 되고 그 바람에 이용자는 표현의 자유와 재산권까지 침해당하는 위헌적 불상사가 일어난다.
실제로 네이버와 카카오의 이용자 약관을 보면 유해 콘텐츠에 대한 정의가 ‘청소년보호법에 규정한 청소년유해매체물, 공공질서 또는 미풍양속에 위배되는 내용’ 식으로 구체적이지 않고 모호하다. 이 또한 사람마다 해석의 차이가 발생해 불공정약관 논란이 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모 포털업체 관계자는 방통심의위가 자율규제 명목으로 사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자율규제를 맡기려면 논란이 일지 않도록 기준이 명확하고 피해자 구제 조치도 마련해야 한다. 지금처럼 규제 기준이 모호하고 피해자 구제 방안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으면 방통심의위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래야 박씨 같은 황당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