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병원 앞 새벽, 캠핑 의자가 등장했다. 의자에 앉은 이의 눈은 퀭하다. 목적 없이 핸드폰만 응시한다. 새벽까지 줄은 개미장처럼 자꾸 길어진다. 새벽 6시가 되어 번호표를 얻은 뒤에야 사람들은 흩어졌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아픈 아이를 챙겨 다시 병원으로 오겠지. 번호표를 맨 처음 얻은 남자는 새벽 2시에 왔다고 했다.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진료를 받길 바라는 그 마음. 그 마음은 아직 가시지 않은 새벽녘 찬 바람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같은 때 동네 아이 한 명도 병원에 입원했다. 엄마는 일주일에 삼일이나 연차를 내고 두 시간 넘게 기다리며 소아과를 다니고 아이를 보살폈다. 나아지는 기미를 보이는가 싶더니 하룻밤 새 감기는 고열을 동반한 폐렴 초기가 되었다. 아침이 되어 부리나케 병원을 찾았지만 아이는 병원 딱딱한 의자에 앉아 기다려야 했고, 진료 후 입원을 권유받았지만 당장 빈 병상은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던 엄마는 소아 병실이 있는 인근 크고 작은 병원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입원할 수 있나요? 아이가 열이 40도예요." "지금 병실은 없고요, 기다리셔야 해요." 엄마의 전화는 한 통 두 통 세 통 늘어났고 점점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했다. "갑자기 너무 무섭더라. 한낮이고 병원이 이렇게 많은데 당장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어." 엄마는 그날을 떠올리며 울컥했다. 이제야 엄마는 아이가 괜찮아졌다며 일주일 넘게 휴가를 냈던 회사에 출근했다.
하루는 놀이터였다. 나의 아이가 눈을 부여잡고 으앙 울기 시작했다. 눈꼬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 눈앞에서 잡을 새도 없이 넘어지며 놀이기구에 부딪힌 것이다. 부랴부랴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소독해드릴 테니, 소아과 의사가 있는 응급실로 가세요." "네? 어디로요?" "A나 B 대학병원에 가보세요. 이렇게 어린아이는 소아과 의사가 보고 꿰매야 해요." 소아과 진료를 셀 수 없이 봐 왔던 병원인데. 아이는 피를 닦고 소독하고 부은 얼굴에 큰 반창고를 붙인 채 다시 어느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야만 했다. 난 그때까지도 몰랐다. 다시 의사를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를. 오후 5시에 다친 아이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나왔을 땐 아주 캄캄한 깊은 밤이었다. 코로나는 기세가 꺾였다지만, 감기에 독감에 수족구병에. 크고 작은 질병과 사고는 아이가 크는 내내 이어질 텐데. 아이가 아프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서울시는 '야간 소아의료체계'를, 보건복지부는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소아 전문 응급의료센터를 8곳에서 12곳으로, 권역 정신응급의료센터를 8곳에서 14곳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그사이 지난 어린이날 연휴에 고열의 다섯 살 아이가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서울 시내 병원을 헤매다 구급차 내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초등학교와 하물며 유치원에도 의대 진학반이 생기는 시대인데. 의대 진학을 염원하는 이유도 소아과 대란도 시장과 상업주의의 기승 때문만일까. 그렇다면 기본 조건이 공정해진다면? 공정해질 수는 있는 걸까. 아니라면 시장과 상업 논리에 맞게 줄 서기 대리자를 구하고 진료 예약권을 암거래하고 주치의 의사를 고용해야 하는 걸까. 아침마다 뉴스를 보며 눈물을 퐁퐁 쏟는 일 말고 난 무엇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