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양파와 대파 가격이 유달리 폭등했다. 지난해 11월 국내산 양파 도매가격은 ㎏당 1,232원으로 1년 전 대비 48.0% 올랐다. 평년(835원)과 비교해도 51.3% 비싼 가격이었다. 대파도 전년 동기보다 20.5%, 평년 대비 14.3% 오른 1,536원에 거래됐다.
양파·대파 가격 급등은 주산지 호남지역의 가뭄 때문이다. 양파는 생육기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호남지역을 강타한 가뭄으로 제때 수분 공급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많은 농가가 고통을 받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올해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 3월 17일 한국일보는 호남가뭄 상황과 관련, 전남 함평의 남종우(63)씨 인터뷰를 소개하며 올해도 극심한 물 부족으로 파종한 양파가 고사 중인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한국일보는 이어 전국 최대 곡창지역이자 주요 농산물 산지인 호남에서의 심각한 가뭄이 일부 농산물들의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했다.
호남 지방의 매년 반복되는 가뭄은 불행한 일이지만, 만약 그 지역에 '지하수 은행'이 충분히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하수 은행이란 평소 남는 현금을 은행에 보관시키는 것처럼 호우로 쏟아진 뒤 인류 경제활동에 기여하지 않은 채 바다로 유출되는 담수자원을 '지하 대수층'(帶水層)에 예금처럼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현금이 필요하면 돈을 찾듯이, 가뭄으로 물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 지하 대수층에 보관했던 수자원을 꺼내 쓰는 방식이다. 윤석열 정부도 최근 내놓은 호남지역에 대한 장기적 가뭄대책에서 지하저류 공간의 확보, 즉 '지하수 은행'을 도서지역을 중심으로 확충키로 했다.
현재 약 5곳에 불과한 지하댐의 추가 건설 등 지하수 은행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우리의 수자원 안보상황이 갈수록 위급해지기 때문이다.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에 따르면 한국은 수자원이 부족한 국가에 속한다. 우리는 '물 스트레스' 지수가 80%를 넘을 정도로 위험한 국가이기도 하다. '물 스트레스(%)'는 이용 가능한 수자원 가운데 실제로 사용하는 비율을 말한다. 즉 한국은 이용할 수 있는 있는 수자원의 80%를 이미 소비하는 국가인데, 이처럼 높은 비율은 전 세계에서 극히 찾아보기 힘들다. 이 기관은 2030년 45개 대도시에서 4억7,000만 명의 인구가 물 부족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도쿄와 LA 및 대한민국 서울이 포함돼 있다. 쉽게 말해 단 한 방울의 수자원도 아끼고 보전해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셈인데, 그 때문에 홍수 때 마구 쏟아져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물을 최대한 지하 공간에 저축하는 방안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지하수 은행은 수자원 적립 원리에 따라 대리함양(in-lieu recharge) 방식과 인공함양(artificial recharge) 방식으로 나뉜다. 대리함양 방식은 평상시에 지표수만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해 대수층에 보관된 지하수 부존량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방식이다. 반면 인공함양 방식은 매우 적극적인 방법으로, 여분의 물을 지하 대수층으로 주입시킨 뒤 강수량이 부족한 시기에 회수하여 이용하는 방식이다.
지하수를 대수층에 인공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표면에서 대수층 깊이까지 파이프를 박아 일정한 압력으로 물을 주입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인공연못이나 도랑을 파서 넓은 면적에서 서서히 주입하는 방식이고, 세 번째는 지하수가 흐르는 유역 하부 지하에 차수벽(지표댐과 유사한 구조)을 설치하여 지하수가 유출되는 것을 막아 지하수위를 상승시켜 대수층의 규모를 확장시키는 방식이다.
지하수 은행의 가뭄 대비 효과는 이미 입증되고 있다. 인근에 지하수 은행이 없는 지역에서는 전체 수자원 이용량 가운데 지하수 비율이 11%에 불과하지만 지하댐을 설치해 지하수가 인공 함양되는 지역에서는 지하수 이용량 비율이 35% 수준에 달한다.
아직은 널리 확대되지 않았지만 지하수 은행은 우리나라와 같은 지형에서는 수자원 이용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기도 하다. 한반도는 동고서저(東高西低)형으로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영동지방은 지형 경사가 급하다. 따라서 지하수 흐름이 빠르고 바다와의 경계부를 통해 지하수가 바다로 빨리 유출되기 때문에 곳곳에 지하댐을 설치해야 한다. 실제로 만성적 물 부족 도시인 강원 속초시에 구축된 쌍천 지하댐은 대표적 성공 사례다. 한국농어촌공사는 현재 동해시에도 유사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서해안과 남해안 지역은 다른 이유로 지하댐의 건설이 필요하다. 이 지역은 동해안보다는 지형 경사가 완만한 반면 해안선을 따라 지하해수가 유입되어 해안지역 주민의 담수 이용에 지장을 주고 있다. 이곳에 지하댐 방식의 지하수 은행을 건설할 경우, 바다로 유출되는 지하수를 막는 효과와 함께 대수층을 통한 해수 유입을 방지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우리 농업이 고부가가치 작물로 집중하는 과정에서도 지하수 은행의 필요성이 높아진다. 고부가가치 작물을 재배하는 전국의 시설농업단지 주변에서는 최근 지하수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겨울철 난방비 절감을 위해 연중 수온이 일정한 수막재배용 수요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수층 내에 부존된 지하수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게 되는데, 이는 가뜩이나 겨울철 강수량이 적은 상황에서 지하수의 극심한 고갈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경남 진주시 시설농업단지 등에서 농어촌공사 주관으로 지하수 은행 구축사업이 진행 중인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지하수 은행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면 이해관계자 집단의 합의가 필요하다. 지하수는 대수층으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관정에서 양수하면 인접한 관정의 지하수위가 낮아져 분쟁 발생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하수 은행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지하수 자원에 대한 재산권을 고려해야 하며 이를 위하여 대수층의 구조, 지하수면의 도달 깊이, 사용 용도, 사용량 등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이해 당사자들 간 적법한 권리와 요구권의 합리적인 조정이 가능하다.
지하수 관리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50개 주별로 크게 5가지 기준(절대소유권, 합리적사용, 수정된 합리적사용, 상호권리원칙, 우선 사용 원칙)의 지하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중 수정된 합리적 사용 원칙(토지소유주는 본인 소유의 관정에서 지하수 양수로 인해 인접한 토지소유주의 지하수 관정 및 주변 수자원을 감소시키면 안 됨)은 우리나라 지하수 제도와 유사하다.
물 권리(water right)의 효율적인 관리에 대한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하수 자원을 국가 소유로 명시하고 있어서 영리 목적으로 양수 권리 매매나 양도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하수 자원의 최적 분배를 위해 공익 목적의 매매나 양도에 대해서는 법적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즉 지하수 전문기관을 통한 공익 목적의 매매나 양도 허용으로 관정별 지하수 권리(groundwater rights)에 유동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적재적소에 관정 재배치를 통한 지하수 최적 관리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