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공습'에 흔들리는 모스크바… "러시아 엘리트 겨냥, 민간 불안감도 조성"

입력
2023.05.31 20:00
17면
CNN·NYT·가디언, 드론 공습 영향력 분석 
"엘리트 거주지 강타·민간인 심리전이 목표" 
드론수 축소 발표… 러시아, 여론관리 집중
우크라, 7월 '평화회의' 추진... 러시아는 배제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무인기(드론) 공습이 이 나라의 심장부를 뒤흔들고 있다. 공격 주체는 불분명하지만, 모스크바의 방공망이 완전히 뚫렸다는 사실 자체가 러시아 엘리트층에 '공포'를 안겨주기엔 충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그동안 거의 모든 전투가 우크라이나 영토 또는 접경 지역에서만 행해졌다는 점에서, 이번 공습은 러시아의 일반 시민들에게 전쟁의 무서움을 직접 체감하도록 하는 효과도 거둔 것으로 파악된다. '전쟁 지지 여론'의 붕괴 가능성이 움틀 수 있다는 얘기다.

추가 확인된 드론 작전, '러 엘리트 거주지'만 노렸다

30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과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이날 새벽 모스크바 드론 공습에 대해 "러시아 지배층의 위기감 조성 목적으로 단행됐다"고 일제히 분석했다.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 해도, 최초 공개된 공격 지점인 모스크바 루블료스카의 고급 아파트뿐만 아니라 추가 확인된 드론 공습 전개 지역도 러시아 고위 관료들의 거주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회의원인 알렉산더 킨슈타인은 "노보-오가료보에서 2.5마일 떨어진 곳에서 드론 여러 대가 격추됐다"고 밝혔다. 노보-오가료보는 '제2의 크렘린궁'으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관저다. 인근에는 러시아 고위직 관료 상당수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이번 공습은 (지난 3일) 크렘린궁 드론 공습 시도와 같은 상징적 타격이 아니다"라며 "러시아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심장부를 강타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인들에게 불안감 주는 것도 공습 목표"

러시아 민간인들로선 '전쟁이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NYT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모스크바 민간인 지역이 전쟁의 직접적 영향을 받은 사례"라며 "일상생활을 하던 러시아인들에게 미친 심리적 영향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짚었다. 신문은 이어 "러시아 방공망을 둘러싼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가디언의 분석도 비슷했다. 가디언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운용은 러시아군의 기반 시설을 겨냥하는 '여건조성 작전'으로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이번 공습은 일반 러시아인들, 특히 부유한 사람들에게 심리적 불안감을 주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정부는 전쟁 반대 여론 확산 차단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드론 공습 규모를 축소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8대의 드론이 모스크바를 공격했고 이를 모두 파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개된 영상을 분석한 결과, 최소 25대(WP)~최대 30대(가디언)의 드론이 모스크바 상공에서 작전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군이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도 여념이 없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모스크바의 방공 시스템은 잘 작동했다"고 강조했다. 안드레이 구룰레프 의원은 "모스크바 시민들은 (적군의) 드론보다 전기 스쿠터에 치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까지 말했다.

'공습 주체' 부인한 우크라, '평화 정상회의' 역추진

러시아로부터 '공습 배후'로 지목된 우크라이나의 대응은 차분하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 보좌관은 "이번 공습은 우리와 직접 연결되지 않았다"면서도 "우리는 이런 공격의 증가를 지켜보게 돼 기쁘다"라고만 말했다.

오히려 러시아를 배제한 채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회의' 추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오는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전에 별도의 평화회의를 열겠다는 게 우크라이나의 구상"이라며 "미국과 서방국들로부터 전쟁 종결과 관련한 통일된 외교 메시지를 재확인받으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재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