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크래프트가 왜 미술관에 전시됐을까?

입력
2023.06.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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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게임사회' 전시 열려
게임 9종, 현대 미술 작품 30여 점 전시


“총을 벽에다가 쏘면 구멍이 생기는 거야. 여기로 물건을 옮길 수 있지. 이렇게.”
“우와, 신기하다. 여기로 이동도 가능한 거야?”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커다란 지하 전시실이 다양한 게임을 즐기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컨트롤러(조종기)를 쥐고 게임을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들이 미술관에서 직접 작동시킨 게임 7종은 모두 상업용으로 판매됐던 게임들이다. ‘팩맨’(1980년) ‘심시티 2000’(1993년) 등 고전 게임부터 현란한 3D 그래픽(화면)을 자랑하는 ‘포털’(2005~2007년) ‘마인크래프트’(2011년)까지. 미술관이 갑자기 커다란 오락실로 변모한 것처럼 보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무슨 이유로 게임을 전시한 것일까.


예술품으로 인정받은 게임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게임들은 모두 ‘예술품’의 자격으로 전시장에 나왔다. 서울관에서 비디오 게임의 역사, 문법과 게임이 동시대 예술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조망하는 ‘게임사회’ 전시가 9월 10일까지 열린다(관람료 2,000원). 국내 게임 2점을 포함한 상용 게임 9점, 김희천과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 등 국내외 예술가들이 게임의 문법을 차용해 제작한 현대 미술작품 3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전시를 기획한 홍이지 학예연구사는 “우리는 이미 게임적 상황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현실에 살고 있다”면서 “특정한 행동을 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게임적 사고를 일상적으로 한다. 앱으로 음식이 어디까지 배달됐는지 지도를 통해서 확인하는 것도 게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현대미술관 "뛰어난 상호작용 디자인 인정"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명에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세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모든 것이 예술품은 아니기 때문. 게임이 어떤 미학적 가치가 있길래 미술관에 전시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모마)은 이미 응답한 바 있다. 사실 이번 전시된 해외 게임 일곱 종 가운데 여섯 종이 모마의 소장품이다. 모마는 2012년 게임 열네 종을 소장품에 처음으로 포함시켰고 현재 서른여섯 종을 소장하고 있다. 당시에도 예술계 일각에서 ‘프로그래밍 코드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반문이 제기되며 논란이 불거졌다.

하지만 모마는 지난해 11월 홈페이지에 발표한 칼럼에서 “이 게임들은 모마가 이미 광범위하게 탐구하고 수집한 분야이자 현대 디자인 창의성의 가장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인 ‘상호작용 디자인’의 뛰어난 사례로 선정됐다”며 이런 질문을 일축했다. 상호작용 디자인은 ‘인간과 기계 사이의 대화’를 설계하는 분야다. 상호작용 디자인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단추에서부터 스마트폰, 게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와 연관돼 있다. 모마는 게임들이 보여주는 복잡하고 창의적인 상호작용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모마가 소장한 게임들은 ‘건축과 디자인’ 분야 소장품으로 분류돼 있다.


관람객들도 다양한 반응 보여

그렇다면 모마가 자신들의 기준으로 선정한 게임을 국립현대미술관은 왜 국내에 전시했을까? 단순히 국립현대미술관이 아직까지 소장한 게임이 없어서일까? 게임이 경우에 따라서 예술품일 수 있다는 설명을 납득하더라도 수많은 게임 가운데 왜 ‘그 게임들’이 한국에 전시돼야 하느냐는 질문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또는 어떤 게임이 예술인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게임이 예술품이란 생각은 잘 들지 않아요. 하지만 게임이 E스포츠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점차 발전하고 있고 한국이 앞서가니까 기념비적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유어진, 중학생)

“모든 게임에는 아트워크의 성격이 있고 사람들에게 뭔가 느끼게 하는 것이 있죠. 새로운 것을 느끼면 그것이 예술 아닐까요.” (나디아즈다, 러시아 관광객)

“게임도 예술입니다. 아름다운 게임이 정말 많죠. 사람들을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심미성까지 있다면 게임도 예술일 수 있죠. 전시된 심시티 등은 예술보다는 놀이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우지민, 1998년생)

“게임 자체가 예술은 아니지만 게임과 예술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예술에서 강조되는 ‘참여 예술’이란 측면에서 맞닿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게임이 예술은 아니지만 돈을 위해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경험을 제공하려고 제작된 게임은 예술적이죠.” (김남인, 대학생)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이번에 국내에 전시된 게임들은 함께 전시된 예술가들의 작품에 영향을 줬거나 주제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마의 작품들을 전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게임사나 예술사적 의의까지 더해진다. 예컨대 전시장 초입에 전시된 ‘헤일로 2600’(2010년)의 경우, 2000년대 작품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래픽이 단순하다. 그래픽의 발전을 추구해 왔던 게임의 역사에서 일탈한 작품이다. 이에 대해서 홍 학예연구사는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쟁, 살상 등 폭력을 주제로 한 게임이 성행했던 시기, 게임 그래픽이 점차 현실처럼 변해가던 시기에 ‘그것들을 즐기는 것이 과연 게임의 주된 목표라고 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진 작품”이라고 말했다.


현대미술, 게임 형식 차용해 효과 극대화

이번 전시에서는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의 영향이 드러나는 작가들의 작품 역시 관람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작품들은 게임 성격을 띠고 있지만 게임은 아니다. 예컨대 로렌스 렉의 작품 ‘노텔 (서울에디션)’(2023년)은 가상의 기업인 ‘노텔코퍼레이션’이 구축한 완전 자동화된 미래의 특급 호텔을 그려낸다. 관람객들은 주인공을 움직여 호텔을 돌아다닌다. 주인공이 걸어 다니면 게임 속의 ‘체력’이 떨어지고 이를 채우는 아이템을 얻지 못하면 게임이 종료된다. 관람객은 사이버펑크적으로 꾸며진 미지의 공간을 거닐며 노동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사회와 호화로운 삶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감지한다.

람한의 작품은 가상현실(VR)을 활용해 다른 회화 등의 매체보다 ‘체험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이 도열한 의자에 누워서 VR 디스플레이를 얼굴에 쓰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을 아예 작품 속으로 던져 넣는 것이다. 관람객은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이 돼 이야기를 ‘체험하며’ 심리적 갈등과 해결 속으로 빠져든다. 관람석마다 동작을 감지하는 장치가 설치돼 관람객이 직접 손을 움직여 작품 속 기물을 움직이는 요소도 있다. 관람객은 게임 속 주인공이 그리던 그림을 직접 찢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더욱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전시장에서 만난 람한은 “관람객이 공간감을 느끼고 체험한다는 면에서 앞으로 VR작업을 계속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전시된 작품은 게이머들이 즐거움을 따지는 게임성 측면에서 보면 미흡한 작품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의 형식을 빌림으로써 작품은 정서적 충격을 극대화한다.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의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2001년)는 전형적 오락실 총싸움 게임처럼 보인다. 관람객이 총을 들고 화면을 향해서 쏘면 사람처럼 보이는 물체들이 쓰러진다. 계속해서 ‘쏘지 마(Don’t shoot)’라는 음성이 나오지만 관람객은 게임에 참여하는 한 계속해서 총을 쏠 수밖에 없다. 그다음 전시실에는 그 모습을 다른 관람객들이 폐쇄회로(CC)TV를 통해서 지켜본다. 방금 전 방아쇠를 당긴 관람객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은 괴로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논쟁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는 게임 전시회를 연 미술관이 기대하는 일이기도 하다. 권태현 미술비평가는 “게임을 국립 미술관에서 다뤘다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면서 “어떤 게임들은 예술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욕망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미술관들은 게임을 소장하거나 이런 전시를 연다. 그것이 논의를 촉발하는 시발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진이 처음 발명됐을 때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그림이나 조각이 미술이지 기계로 찍어내는 것이 무슨 미술인가’. 현재 게임이 딱 그런 위치에 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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