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입력
2023.05.31 19:00
25면

편집자주

판결은 재판받는 사람에게만 효력이 있지만, 대법원 판결은 모든 법원이 따르는 규범이 된다. 규범화한 판결은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판결과 우리 삶의 관계를 얘기해 본다.


재판 10% 지연, 사법신뢰 2% 하락
최근 5년 부쩍 늘어난 재판지연 사례
법관 증원, 제도개선 등 해결책 필요

우리 헌법 제27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 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신속한 재판이라 함은 공정하고 적정한 재판을 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넘어 부당하게 지연됨이 없는 재판을 말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민사소송법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법조문이 만들어진 이유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외국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유럽연합기본권헌장 제47조는 "모든 사람은 법률에 따라 설립된 독립적이고 공정한 법원에 의하여 합리적 시간 내에 공정한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2013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평균 재판기간이 10% 지연되면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는 약 2% 감소한다고 한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Smith v. Hooey 사건에서 검사의 기소에 따라 피고인에게 발생하는 불안감과 걱정을 최소화하고, 오랜 재판으로 인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 능력이 약화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함으로써 헌법상 기본권인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심지어 Barker v. Wingo 판결에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에 대한 유일한 법적 구제수단은 공소기각이라고 하면서 감형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판시하였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신속한 재판의 원칙이 침해된 경우 원칙적으로 양형에서 감경사유가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여야 하는 이유는 확정판결이 신속하게 되면 될수록 법적 평화가 빨리 회복될 수 있고, 시간이 경과될수록 증인의 기억력이 약화되거나 증거가 없어질 수 있고 심지어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사람이 사망하면 반대신문을 통하여 그 사람의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할 수도 없게 된다.

그런데 최근 재판지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재판을 수행하고 있는 변호사가 느끼기에도 예전에 비하여 변론과 판결 선고가 지연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변협이 2022년 9월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중 89%가 최근 5년간 재판지연 사례를 겪은 적이 있다고 답변하였다.

재판지연의 이유로 판사가 예전보다 일을 덜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판사가 미제사건의 신속한 처리에만 몰두할 경우 충실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것보다는 다른 제도적 해결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법률개정과 예산편성을 통하여 판사의 수를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해결방안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우리 법원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판사의 인사이동이 너무 잦다. 판사의 전보로 인하여 1~2년 주기로 재판부가 교체된다. 재판부가 교체되는 경우 새로운 재판부가 사건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당연히 재판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원칙대로라면 재판부가 바뀌면 직접주의, 구술주의 등 공판중심주의 원칙상 처음부터 증거조사를 다시 해야 하지만 우리 법원에서는 대부분 몇 마디 말로 증거조사를 한 것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들은 재판부가 사건을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걱정하게 되고 이러한 걱정은 변호사도 마찬가지이다. 재판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나오면 그 불신은 더 커지게 된다.

결국 재판 지연을 해결하는 방법은 그리 간단하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현재의 법관 임명, 인사제도를 개선하는 방법, 법관의 수를 늘리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안들이 활발히 논의되어 더 이상 정의가 지연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용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