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MBTI 말고 나를 아는 법

입력
2023.05.31 22:00
27면

알다시피 사주(四柱)는 말 그대로 4개의 기둥인데 한 사람이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의 4가지를 가지고 산출한다. 그렇게 산출한 8개의 글자를 가지고 나를 알아보는 것이 사주팔자(四柱八字)이다. 복잡하게 들어가면 이 글자 하나하나의 음양 속성에서부터 대운과 세운, 해석에 있어서 합·충·형·파 등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요즘에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8자 산출과 더불어 풀이까지 해주는 곳이 많다. 격세지감.

어딘지 흡사하다. 이상하게 데자뷔처럼 겹치는 모습이 있다. 바로 MBTI다. MBTI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격에 관심이 많았던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ook Briggs)와 그녀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가 융의 심리학 이론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혈액형을 넘어서 MBTI로 진화한 우리네 성격 찾기는 나 자신도 나를 잘 모르니, 스스로를 어떤 기준에 의해 분류하고 싶고, 누군가 나를 설명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구에서 기인한다.

사주와 MBTI에 열광하는 모습, 그리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에 열광하는 현상에 혀를 차는 모습. 우리 사회가 가진 양면성이다. 하지만 아마도 '나'를 알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동일하게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희한하게도 뭔가에 의존하지 않으면 나를 볼 수 없다. 그 '뭔가'의 대표 격이 거울인데 그걸 통하지 않고서는 나는 내 얼굴조차 알 수 없다. 이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통해 나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마시는 커피는 어떤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까. 습관적으로 마시는 커피라도 이유나 의미가 있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는 단 음료 섭취를 줄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 물을 잘 마시지 않게 되었다. 이건 피부와 눈의 건조함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지만 그래도 끊을 수가 없는 이유는 평소에 느끼하고 단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려는 욕구 때문이다. 커피를 생각하기만 했는데도 줄줄이 나에 대한 단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물의 철학'에서 함돈균 평론가는 마스크라는 사물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마스크는 인간이 아직도 '알 수 없는 것들'과의 생존 전쟁에 노출되어 있는 연약한 생물종이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사물이다."

나에게 마스크의 의미는 뭔가? 마스크를 쓰기 싫은가, 지금도 쓰고 있는가. 우리는 내 주변에'만' 존재하는 사물이나 혹은 멀리하는 사물을 통해서 나 자신을 알 수 있다. 물론, 내가 자주 어울리는 사람들을 약간 떨어져서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봄으로써도 나를 알 수 있다. 이건 혼자서 '나는 누구일까,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정확하다. 너무 원론적인 주제를 먼저 찾아 들어가기보다 예시들을 통해서 결론(비슷한 것)에 도달하는 귀납식 추리라고나 할까.

오늘 하루는 내 주변 사물부터 가만히 관찰해 보자. 그다음엔 내 주변 사람들이다. 나는 어떤 모습인가? 지금 지나가고 있는 운명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려면 무엇을 바꾸거나 유지해야 할까? 이렇게 나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고 알아가는 시간 자체가 지금까지 산 인생을 존중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계획하는 자연스러운 행위 아닐까.


박훌륭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