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당론보다 양심 믿었다... 입법기관이니까"

입력
2023.05.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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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찬성했던 여당 의원의 소신

간호사-의사 간 벼랑 끝 대치로 이어진 간호법 제정이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30일 국회 재의결 투표 끝에 무산됐다. 여야 타협 실종에 넌더리가 날 참인데 그 가운데에서도 꼿꼿하게 제 역할을 하고 바른 말로 쐐기를 박은 의원이 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은 4월 27일 국회에서 간호법 반대 당론에 맞서 찬성표를 던지고는 “의료단체 간 분쟁이 있다고 해서 옳은 일을 미루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당론이 아닌 민의를 대변했다”고도 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3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를 ‘비문명’으로 몰아칠 때도 시위현장을 찾아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 원칙과 소신을 우리는 왜 다른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걸까.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난 김 의원은 “당론에 맞서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내 양심, 내 판단을 더 믿었다”며 “그게 입법기관의 일”이라고 말했다.


“반대할 근거 없는데 당론 따를 수 없었다”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연숙 의원과 단둘이 남아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 당론을 무릅쓴 이유는.

“최 의원은 간호사 당사자이자 법안 발의자로서 찬성투표가 당연할 것이다. 나도 2개 간호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공동발의자로서 책임을 지는 게 입법기관의 일이라고 봤다. 그게 올바른 처신이고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역할 아닌가. 의사들의 반대에 근거가 있는지 법안을 꼼꼼히 읽어봤다. ‘지역사회에서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 때문에 간호사들이 단독 개원할 수 있다는 우려에는 전혀 근거가 없었다. 간호조무사 관련 내용도 (현행법보다) 축소되지 않았고 간호사와 함께 처우개선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의사협회와 간호사협회가 소통을 했으면 풀 수 있는 문제다. 소통이 안 된 것은 여당 책임이기도 하고 다수 당의 책임이기도 하다. 협치가 부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당론을 따르는 게 맞나 의문을 갖게 됐다. 법안에 반대할 근거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따르기가 힘들었다. 오래 정치할수록 정치적 시각, 정당 입장에서 법을 보는 듯한데 초보, 영유아 정치인인 나는 오히려 국민 건강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어머니가 간호사로 30년 이상 다양한 곳에서 일했는데 1980년대 초반 내가 어릴 때 도서산간 무의촌 지역에서 일하셨다. 의사 없는 상황에서 급하면 1차로 환자를 살펴보고 병원으로 옮기고, 밤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뛰어가는, 그런 삶이었다. 지역사회에서 간호인력이 얼마나 많이 애쓰고 있는지, 전해 들은 게 아니라 내 삶에서 배웠다. 진작 의료법에 반영됐어야 하는 내용이고 이제라도 근거가 마련되는 게 다행이다. 이런 현실을 알고서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정치인이 국민 입장에서 법을 보고 법안 내용에 따라 찬반 결정을 한다는 건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선 이게 왜 그렇게 어려울까. 정치인들이 조직화된 표를 너무 의식하고, 당론에 너무 구속되는 것 아닌가.

“양당의 대립 구도가 고착화되어서 그런 것 같다. 선거 때 보면 세력을 유지하고 지지자를 결집시키기 위해 저러는구나 짐작된다. 연예인들이 팬 관리하듯이 정치인들이 당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표심을 따르는 것이다.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국민들이 지혜를 발휘해서 표를 현명하게 써야 할 것 같다. 정치집단은 표에 의해 움직이니까 국민들이 무조건 지지하기보다 언제 말이 달라졌는지, 입장이 바뀌었는지 관찰하고 분석해서 표를 줘야 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법안이 올라온 걸 보면 추측성 우려 같은 것도 다 확인할 수 있다. 국민들이 문제 제기를 해야 정치집단이 변한다.”

-당내에선 뭐라고 하던가?

“본회의 표결 때 몇 분 의원들이 함께 퇴장하자고 설득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보좌관들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랐을 것이다. 지난해 전장연 시위현장을 찾아갔을 때도 보좌관들이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기사가 쏟아지면서 힘들어했다.”


전장연 방문, 반대 있다고 안 가야 하나

-전장연 시위현장 방문을 보좌관들이 몰랐다고? 공유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보좌관들에게 이야기했다가 동의하지 않으면 어쩔 건가. 평소 보좌관들에게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라고 한다. 결국 중요한 건 (의원인) 나의 생각이다.”

-시위현장을 가기로 결심하게 된 생각은.

“진작 가지 못한 게 아쉬웠다. 사실은 정치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 나서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조율해 주기를 기다렸었다. 어느 한 당이 선거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정당이 함께 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장애인 권리 문제가 편을 가르는 일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아무도 안 움직이더라. 더 이상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니 마땅히 내가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당대표에 반기를 든 의원으로만 비쳐서 안타까웠다. 장애인 단체에 오히려 폐를 끼쳤구나 생각했다. (이 전 대표와 전장연) 대립의 한 축이 돼 버려서. 당원들로부터 지탄을 많이 받았고 지금도 계기만 있으면 그 일을 언급하는 댓글이 올라온다. 국회에서 조용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여전히 나를 한 명의 정치인으로 보지 않는구나, 입법부에 들어왔는데도 소수자에 불과하구나 절감했다.”


“정치감각? 국민 입장에서 본 것일 뿐”

-당시 이 전 대표와 전장연의 대립이 워낙 큰 논란이 됐을 때라 그랬을 것이다. 실제로 김 의원이 장애인 권리 문제를 강조하는 동시에 정치인 책임을 인정하며 통합 메시지를 낸 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정치인이 꼭 해야 할 말이었다.

“그러면 언론이 이 전 대표 같은 정치인 말고 나 같은 정치인 기사를 많이 써줘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갈등과 논란을) 언론이 너무 조명해 주니까 (정치인들이) 더 즐긴다. 나쁜 것만 많이 보도되면 국민들은 나쁜 것인 줄도 모른다. 기사를 끝까지 정독하지도 않는다. 언론이 싸우는 정치 기사 말고 반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정치 기사에 관심을 가져달라. 10개 중 3개라도 좋은 기사를 써달라.”

-당시 김 의원은 장애인과 시민 모두에 사과를 했고, 언론에 “장애인이 그렇게 (시위)할 수밖에 없는 것을 들어주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챙기는 게 정치권, 정치 지도자”라는 말도 했었다. 이런 상식적인 균형감각이야말로 요즘 절실히 필요한 정치감각인데, 그런 감각은 어디서 온 건가.

“당대표쯤 되는 사람이 시위현장에 가서 그렇게 했어야 맞다. 나는 정치감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감각이 있었다면 그 자리에 안 갔겠지. 나는 그저 정치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에 가깝다. 심부름꾼인데 힘이 없어서 죄송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편 갈라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에 국민도 언론도 호응하면서 혐오 정치가 강화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인 개개인을 보면 공감을 잘하고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는 이들도 있다. 다만 당 차원에서, 또 선거를 치르게 되면, 다른 반응이 일어난다. 혐오 정치를 막는 건 결국 시민의 지혜다. 소수 정치인에 기대지 말고 내가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집회도 있고 준법투쟁도 있고 선거로 심판할 수도 있다. 누군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그 힘으로 정치집단을 이끌어 달라.”


“정치, 갈등 조정하는 역할 확대해야”

-결과적으로 당대표, 당론에 맞서는 입장을 취한 것인데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나.

“전장연 방문 때는 그런 생각을 할 여력도 없었다. 간호법 투표 때는 직전까지도 당론을 거스르는 게 얼마나 큰 부담일까, 부담이겠지, 그렇다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행동해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저의 양심, 내 판단을 믿었다. 그 때문에 어떤 징계를 받게 되면 마땅히 받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두려워서 내 결정을 바꾸지는 않았다.”

-간호법은 결국 폐기됐고 직역 간 갈등은 더 깊어진 상태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

“법 제정이 하루 이틀 논의로는 어렵다. 사실 이 법이 발의된 지는 오래됐는데 지방선거, 대통령선거에 밀려 있다가 법안 심사가 급하게 이뤄졌었다. 그보다는 천천히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새 법을 만드는 게 좋겠다. 내가 상비약 오남용을 막기 위해 장애인을 위한 정보표시를 하도록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을 때에도 제약회사들이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했었다. 그래서 제약 관련 협회, 약사회, 식약청, 복지부를 다 모셔서 간담회를 했다. 점자든 큐알코드든 바코드든 가능한 형태로 경제적인 방식을 택하도록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법이 통과했다. 반대 없는 법안은 없다. 모여서 논의하고,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모여야 한다. 한 당만 말고 다른 당도 함께, 우려도 듣고 공부도 해야 한다. 이런 숙의를 거쳐 간호법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미래 정치에 바라는 점이기도 하다. 정치가 현장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가 다수당일 때 여당일 때 서둘러 해치우려 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고 지탄을 받더라도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갈등을 조율하면서 듣고 논의하기를 바란다.”


“소수자 모인 것이 사회, 국회가 대변해야”

-선거제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이고 그 쟁점 중 하나가 비례대표다. 국민의힘에선 비례대표 확대에 반대가 많았던 반면 국민 여론은 숙의 후 비례 확대 찬성이 27%에서 70%로 놀랄 만큼 늘었다. 비례대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선거제 개편에 다양한 안이 나오는데, 다양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가 전달이 되지 않다가 논란이 커지고 나서야 언론이 관심을 갖고 정치인이 나서는 그런 상황을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비례대표가 국회에서 소수자집단을 대변하는 역할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장애인 의원의 경우 21대 국회에 3명이 있는데 많이 부족하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장애를 겪는 이들이 크게 늘어날 게 당연하기 때문에 입법과 정책을 마련할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장애인이 편하면 영유아 노인 등 모두가 편한 세상이 되는 것이고 곧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 간호법 사례를 보면 특정집단을 대변하는 의원이 한 정당에만 있어서도 안 될 것 같다. 여러 정당에 대변자가 있어야 한다. 입법부뿐만 아니라 사법부 행정부에도 다 필요하다.”


-비례 의석이 확대되고 개방명부가 도입되면 소수자 할당도 이슈가 될 수 있다. 김 의원이야말로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환기, 전장연 시위 대응 등을 통해 소수자 할당의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준 의원이라고 할 만한데.

“할당제를 통하지 않고선 지금의 정치 생태계에 소수자가 비집고 들어오기가 힘들다. 잠시 관찰해 보기론 이런 정치가 1년 안에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진보 보수를 떠나 변화가 더딘 정치 생태계 특성상 소수자 할당은 필요하다.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소수자는 언제나 있고 계속 나타날 것이다. 다양한 양상을 띤 소수자들의 의견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공동체가 발전하려면 그런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국회의원이 되길 잘했다고 느꼈던 것은 언제인가?

“약사법 개정 때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점자가 찍힌 종합감기약이 나오고 치약, 라면에도 점자 표기가 생기는 걸 보면서 내가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구나 실감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공보책자 면수 제한을 풀고 점자 정보를 담도록 했는데 이 역시 선거 때 달라진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도 국회에서 발달장애 학생들의 웹툰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장애예술인들 활동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국민의힘의 영입을 받아들이길 잘했다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열정과 의지가 있는 분이 이 자리에 와서 이런 변화가 끊이지 않도록 해 주길 바란다.”

-정치를 계속할 생각은 안 하나.

“할 수 있겠나. (웃음) 생각 안 한다. 그저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들이 국회에 들어와서 제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 비례대표는 상징성 이상의 역할이 있다. 아무 쓸모 없는 비례대표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 지금까지 3년간 노력했고 1년 더 할 것이다. 소수 의견을 내는 역할이 중요하다. 비례대표들이 무조건 당을 대변할 게 아니라 소수자 대변자 역할로서 객관화하기를 바란다. 나는 음악을 가르치는 일이나 강연 등 해 오던 일이 있다. 정치를 그만하더라도 정치집단이 움직이는 방식을 알았으니 활동가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도 의미 있다고 본다. 어느 자리에 있든 국회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돕겠다.”

김희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