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바다 모래 수출을 20년 만에 허용하기로 했다. 모래는 간척 매립 사업은 물론, 건설 현장 자재나 전자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중요 자원이다. 모래 매입에 사활을 걸어온 싱가포르 등 이웃 국가들은 조용히 미소 짓는 반면, 환경단체 쪽에선 “해양 환경 악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해양 퇴적물 관리 규정에서 ‘해사(海沙) 수출 금지’ 항목을 폐지하기로 했다. 앞서 인도네시아는 2003년 과도한 모래 채굴로 △침전물 흐름이 바뀌고 △어장 및 생태계가 파괴되며 △수원이 오염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자국 모래와 흙의 해외 반출을 금지했다. 정부는 이런 결정을 20년 만에 뒤집은 이유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현지 언론들에선 “수익을 높이기 위한 조치일 것”이라고 추측이 나온다. 모래가 ‘돈’이 되는 까닭이다. 바다에서 채굴되는 모래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의 주재료다. 간척지를 매립해 지반을 다질 때에도, 그 위에 건물을 올리거나 도로를 만들 때에도, 거의 모든 공정에 모래가 들어간다. 반도체 주원료인 실리콘도 모래에서 추출된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자 전략 자원인 모래를 수출해 국가 이익을 늘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얘기다.
이번 조치에 특히 반색하는 곳은 ‘영토 확장’이 국가적 과제인 도시국가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이후 국토 면적의 4분의 1을 늘렸는데, 주로 모래를 이용해 해안 지역을 매립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2003년 이전까지 싱가포르 전체 모래 수입량의 90%가 인도네시아에서 나왔다. 유엔 국제무역 통계(유엔 컴트레이드)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싱가포르로 흘러 들어간 인도네시아산 모래가 최소 1억5,000만 톤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2003년 갑작스레 수출을 중단하면서 싱가포르는 크게 휘청였다. 석유 파동에 버금가는 ‘모래 파동’이라는 이야기마저 나왔을 정도다. 부랴부랴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모래를 조달했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 캄보디아(2017년)는 물론, 인도네시아 이후 최대 모래 수출국이었던 말레이시아(2019년)마저 공급 중단을 선언해 버렸다. 그 여파로 지금까지도 신항만 건설 등 각종 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날 스트레이트타임스 등 싱가포르 매체는 인도네시아 소식을 메인 뉴스로 다루며 “싱가포르에 호재”라고 평가했다. 헤리 토사 인도네시아 바다모래광부협회(APPL) 회장은 “벌써부터 주요 모래 수출 시장인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홍콩 등 다른 국가들도 공항 건설 간척 프로젝트를 위해 인도네시아산 모래 수입을 고려하고 있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반복적인 모래 채굴 행위가 해안 침식을 가속화하고 연안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다. 인도네시아 환경단체 ‘왈히’의 파리드 리드와누딘 운동가는 “모래 준설은 해수면 상승을 불러오고 섬을 물 아래로 사라지게 만든다”며 “바뀐 정책은 더 건강한 바다 생태계를 만들고 해안을 보호하겠다는 (현직 대통령인) 조코 위도도 정부의 공약에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잇단 우려에 와휴 무르야디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 대변인은 “작업 계획서, 허가서 등 기본 조건과 환경 기준을 갖춘 경우에만 모래 채굴을 허용할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