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투표 결과 끝내 폐기됐다. 양곡관리법에 이어 '거부권 정국'이 고착화하면서 6월 국회도 험로가 예상된다.
여야가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간호법에 대해 재표결을 실시한 결과, 재석 289명 중 찬성 178표, 반대 107표, 무효 4표로 부결됐다. 지난 16일 양곡관리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2주 만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재의결되기 위해선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전체 의석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힘(113석)이 일찍이 당론으로 부결 방침을 결정한 만큼 간호법 폐기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번 국회 들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안이 폐기된 사례는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가 한 걸음씩 양보해 조정안을 마련할 것을 여러 차례 당부드렸음에도 정치적 대립으로 법률안이 재의 끝에 부결되는 상황이 반복됐다"며 유감을 표했다. 6월 국회에서 처리가 예상되는 '노란봉투법'이나 방송법 등도 거부권 행사가 유력한 실정이다.
재표결을 주도한 민주당은 법안을 저지한 국민의힘을 거세게 비판했다. 투표 직전 토론에서 서영석 민주당 의원은 "여당이 자신들이 발의하고 심사한 법안의 투표를 거부하며 용산에 미운털이 박혀 공천을 받지 못할까 봐 자기부정에 급급하다"고 꼬집었다. 김한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본회의 직후 취재진과 만나 "더욱 내실 있게 공공의료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새 법안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에게 간호법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디딤돌에 불과했다"며 "법안을 부결시켜 재의결을 요구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부담을 안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고 비판했다. 김영경 간호협회장은 재표결 직후 기자회견에서 "62만 간호사들은 부당한 불법진료 지시를 거부하는 준법투쟁에 참여하고, 내년 총선에서 부패한 정치와 관료를 심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는 이날 4개의 상임위원장 자리도 교체하기로 했으나 새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을 선출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몫인 교육위, 행정안전위, 보건복지위의 위원장 후보를 놓고 당내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회의 직전에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후보 내정자들의 자격을 두고 반대 의견을 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육위원장과 보건복지위원장으로 내정된 박홍근, 한정애 의원은 각각 원내대표와 장관직을 맡은 바 있어 요직을 독차지한다는 취지로 비판이 나오자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위원장 후보로 내정된 정청래 의원도 최고위원을 맡고 있어 과방위원장으로 선출될 때부터 당직 겸직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의총 결과 브리핑에서 "국민들이 쇄신과 혁신을 기대하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상임위원장 후보 추천에 관해 당내 논의를 더 하는 게 좋겠다는 여러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민주당은 상임위원장 후보 선출을 위한 새 기준을 마련해 다음 달 본회의에서 선출에 나설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3선 의원 가운데 연장자 순으로 후보를 낙점해 왔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무소속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도 보고됐다. 국회법상 체포동의안 표결이 보고 이후 72시간 이내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음번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에 차기 본회의가 예정된 다음 달 12일 표결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별도의 당론 없이 의원들의 자율투표에 맡길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