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에서 주연 된 엔비디아

입력
2023.05.30 17: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글로벌 패권 경쟁이 한창인 현재 반도체 시장 주연은 누구일까. 파운드리(위탁생산) 강자인 대만 TSMC일까, 아니면 메모리반도체 선두 삼성전자일까. 지금 상황만 보면, 미국 엔비디아가 ‘원톱 주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주 깜짝 실적 전망을 내놓은 엔비디아는 전 세계 반도체 기업의 주가를 일제히 끌어올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스스로는 시가총액 9,600억 달러를 넘어서며 1조 달러 클럽 가입을 눈앞에 뒀다. 앞서 가입한 곳은 애플, MS, 알파벳(구글 모회사), 아마존뿐이다.

□엔비디아의 출발은 단역 조연이었다. 대만계 미국인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1993년 실리콘밸리 산호세의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엔지니어 친구들과 컴퓨터 발전 방향에 대해 토론하다 회사를 차리기로 의기투합했다. 게임용 그래픽 화질을 높여주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뛰어든 것은 게임광인 그의 관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텔이 장악하고 있던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비껴가기 위해서였다. 당시만 해도 GPU는 컴퓨터 뇌 역할을 하는 CPU의 보조장치 정도로 여겨졌다.

□크리스 밀러는 ‘칩워(Chip War)’에서 “2010년대 초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들이 GPU를 그래픽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엔비디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하나의 계산이 끝난 뒤에야 다른 계산을 하는 CPU와 달리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게 연산을 수행하는 GPU가 CPU를 제치고 AI 등에 활용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엔비디아가 AI에 회사의 미래를 걸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엔비디아는 전 세계 GPU 시장의 90%를 장악한다. 챗GPT 등 생성형 AI 등장과 데이터센터의 확대는 엔비디아 GPU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주문이 6개월 이상 밀리는 등 공급난이 심각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마약보다 구하기 힘들다”고 언급할 정도다. 엔비디아 GPU의 성장은 제품을 위탁생산하는 TSMC의 일감도 늘리고, AI 반도체에 들어가는 국내 메모리반도체의 수요도 늘린다. 나쁘지는 않은데, 독보적인 초격차 기술이 없으면 조연으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일 수도 있겠다 싶어 걱정도 된다.

이영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