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의 눈물과 남녀고용평등법

입력
2023.05.31 17:00
26면
여러 채용비리 중 성차별이 가장 압도적
현행법 사업주 벌금 500만 원 이하 규정
성차별 당연하다면, 0.78 출생률도 당연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몇 년 전 화장실 구석에서 인턴기자가 그야말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 알아보니, 취업 면접에서 탈락해서라고 했다. 재작년 함께 일했던 여성 인턴도 점심을 먹다가 말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 또한 입사 시험 탈락이 이유였다.

우울하고 짓눌린 그들의 표정에서 이 세상의 ‘청춘 찬양’은 모두 거짓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이런저런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준 적도 있지만, 근본적인 불안은 결코 달랠 수 없다는 걸 안다. 간혹 취업에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기뻤으나, 많은 청년들이 어딘가에서 또 눈물을 흘리고 있으리라는 씁쓸한 현실 인식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대학생 인턴들이 생각난 이유는 이달 초 신한카드가 남녀 성비를 7대 3으로 맞추려 점수를 조작해 여성 지원자 92명을 탈락시켰다가 재판을 받고 있다는 보도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생일대의 노력들을 손쉽게 구겨서 ‘불공정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는 이들은 누구인가.

몇 년 전 떠들썩했던 보도들을 기억한다. 여러 시중은행과 지역은행에서 심각한 채용비리들이 줄이어 터져 나왔다. 성차별은 가장 두드러진 형태였다. 하나은행 채용비리 판결문을 보면, 지원자 성비 차이가 거의 없는데도 남녀 합격자 비율이 9대 1(2013년 상반기), 7대 3(2014년), 4대 1(2015·2016년)이 되도록 조작했다. 국민은행도 한 해에만 남성 113명의 서류전형 평가점수를 높이고, 여성 112명의 점수를 낮췄다. 출신 대학에 따른 면접점수 조작, 청탁에 따른 특혜 합격 비리들도 상당했으나, 성차별 규모는 더 압도적이었다.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는 아예 여성 전원을 탈락시켰다. ‘모터카 및 철도장비 운전’ 공채에서 최종 1위를 차지한 여성 응시자의 점수를 무려 87점에서 48점으로 조작했다.

신한카드 사건이 2017년 발생했고, 위의 알려진 사건들도 모두 2020년 이전이라고는 하지만, 취업시장에서의 성차별은 지금도 암암리에 벌어지는 흔한 비리이다.

이런 심각한 성차별 비리에도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으로 기소된 하나은행 인사담당자들에게 지난 3월 집행유예와 벌금 100만~1,000만 원이 확정됐다. 당시 은행장들에겐 “최소 10년 이상 관행적으로 지속돼 피고인의 영향이 적었다”는 등의 이유로 하급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국민은행 전 인사팀장 한 명이 특혜채용까지 합쳐 최종 징역 1년의 실형을 확정받았을 뿐이다. 신한카드 성차별 채용 사건도 애초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됐다가 판사가 정식재판으로 넘겼다.

신체 능력 등 남녀 차이가 적용되는 직종도 있다는 주장들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렇다면 ‘성별’로 나눌 게 아니라 ‘신체 능력’을 평가할 시험기준을 만들면 그만이다. 고연봉 현대차 생산직 채용에서 오랫동안 여성은 ‘입구 컷’당하고, 성별 차이가 왜 필요한지 모르는 금융사조차 마찬가지였다.

남녀고용평등법(37조)이 성차별 채용 사업주에게 고작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명하고 있는 걸 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이 문제를 하찮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실무자들에겐 특혜채용 혐의가 함께 적용됐지만, 남녀고용평등법만 적용된 국민은행 법인에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의 온전한 이름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오랜 기간 여성 노동자 차별을 당연시 여겨온 사회라면, 출생률 0.78명에 “너무 낮다”는 말 자체를 꺼낼 이유가 없다.

이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