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 아래서 조선 전기 유구 흔적 확인했다

입력
2023.05.3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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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앞에서 발굴된 월대(月臺, 越臺) 아래서 고종 이전 시기의 것으로 보이는 유구의 흔적이 일부 확인됐다. 월대는 고종 때 축조된 경복궁 안팎을 연결하는 통행로로 사용된 넓은 단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9월부터 월대를 발굴해 지난 4월 월대의 전체 규모를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이뤄진 추가 조사에서 고종 이전에도 광화문 앞에 월대와 유사한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서울문화재연구소는 30일 월대 하부에서 발견된 유구 등의 사진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광화문 바깥의 지층은 조선 전기 문화층(14~16세기) 조선 중·후기 문화층(17세기 이후), 월대 조성층(19세기)을 거쳐 근현대도로층(20세기)의 순으로 형성됐다. 조선 전기 문화층은 2007년 광화문 발굴조사에서도 확인된 층이다. 이번 월대 하부 조사에서 새롭게 확인된 유구는 월대의 어도지(어도·임금이 지나도록 만든 길) 서쪽 기초시설 하부 약 120㎝ 지점에 위치한 조선전기 문화층의 최상단에서 확인됐다. 사각형 석재를 중심으로 양쪽에 남북 방향으로 석렬(돌로 열을 지어 만든 시설)이 한 줄씩 배열된 모양이며 사각형 석재 중앙에는 직경 6cm의 철제 고정쇠가 박혀 있다. 연구소는 고정쇠는 궁중 행사에서 햇빛을 가리기 위해 사용되는 차일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와 유사하고 경복궁 근정전이나 종묘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월대를 10월까지 복원할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월대를 광화문 앞 도로를 굴절시키면서까지 복원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돼 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이 광화문 밖에서 무과 시험을 참관했다는 기록(세종실록 97권, 1442년), 광화문 밖에서 산대놀이를 구경했다는 기록(중종실록 90권, 1539년) 등이 있으나 시기가 현재 복원이 추진되는 월대의 조성 시기보다 앞선다. 연구소는 “고종 연간에 월대가 축조되기 이전에도 광화문 앞 공간이 활용됐다는 사실을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해오다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물적 증거까지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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