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이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다음 달 1일 시행된다. 만 18세 이하 소아청소년 초진 환자는 야간 및 휴일에 한해 '비대면 의학적 상담'이 가능하다. 소아청소년 환자 초진을 놓고 의료계와 플랫폼 업계가 갈등 중인 상황을 감안해 정부는 진료 대신 상담이라는 일종의 절충안을 내놓은 것이다. 비대면 진료 수가는 대면 진료보다 30% 높게 책정됐고, 코로나19 확산 때 가능했던 약 배달서비스는 금지된다.
보건복지부는 30일 제9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안을 확정했다. 비대면 진료는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전화·화상을 통해 상담하고 약을 처방하는 방식으로, 코로나19 사태 때 한시적으로 허용돼 3년여간 3,786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코로나19 위기 단계의 하향으로 비대면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시범사업을 통해 계속될 수 있도록 했다.
다음 달 시작되는 비대면 진료 시범 사업은 원칙적으로 만성질환자 등 기존에 대면 진료를 받았던 환자가 같은 의료기관에서 동일한 질환에 대해 추가로 진료를 받을 때만 가능하다. 다만 의료기관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초진도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다. 의료기관이 현저히 부족한 섬과 벽지의 환자,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만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 격리 중인 감염병 확진 환자 등이 해당한다.
의사 부족으로 인한 '소아과 대란' 속에 첨예한 쟁점이었던 야간과 휴일 소아청소년의 비대면 진료도 재진만 가능한 게 원칙이지만 복지부는 대면 진료 기록이 없더라도 야간과 휴일에는 비대면 의학적 상담이 가능하도록 '옆문'을 열어 뒀다.
대한의사협회는 오진 등으로 인한 환자 안전 문제를 우려해 소아청소년 환자의 비대면 초진에 강력 반대하고 있지만, 플랫폼 업계는 비대면 진료에서 초진을 제외하면 업계가 고사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에 복지부가 내놓은 '의학적 상담'은 정식 진료가 아니라 처방전 발급이 불가하지만, 건강보험 수가는 적용되는 애매한 지점에 있다. 차전경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상담을 통해 부모가 적절한 판단을 내리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의학적 상담은 진료 방식의 한 가지로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진료는 환자가 요청하면 의료기관에서 판단해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화상진료가 원칙이지만, 스마트폰이 없거나 활용이 어려운 경우 예외적으로 음성전화를 통한 진료가 가능하다.
처방전은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으로 팩스·이메일 등을 통해 전송된다. 의약품은 약사와 협의해 본인 수령, 대리 수령, 재택 수령 등을 정할 수 있지만 재택 수령(의약품 배달)은 섬·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감염병 확진 환자, 희소질환자에 한해 허용된다. 마약류 의약품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처방이 금지된다.
시민단체 등은 비대면 진료 보험 수가를 올리는 게 비합리적이라고 반발하지만 복지부는 시범 사업의 특성상 추가되는 업무 등을 고려해 기존 수가를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 3년간 의료기관은 진찰료의 30%, 약국은 약국관리료·조제기본료·복약지도료의 30%가량이 가산됐다. 환자 입장에서는 가산된 수가만큼 본인부담금이 소폭 늘어난다.
복지부는 의료기관의 월 비대면 진료와 약국의 월 비대면 조제 비율은 30%로 제한하기로 했다. 비대면 진료만 전담하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운영되지 않도록 막기 위해서다.
환자와 의료기관 등의 적응 기간을 감안해 오는 8월까지 3개월은 단속과 제재를 최소화하는 계도기간으로 설정했다. 차 과장은 "시범 사업에 대한 평가·분석, 의약계 및 전문가 등의 의견을 반영해 수가를 포함한 전반적인 비대면 진료 사업의 적절성을 검토하고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