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돌 하나하나 병사와 민초의 피눈물이 쌓였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 없이 가파른 산꼭대기에 석성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산성 여행지를 소개한다.
경기 광주 남한산성은 통일신라시대 주장성 터에 성돌을 쌓아 1626년 완공했다. 이괄의 난을 겪은 뒤 조선 왕실의 피신처로 지었다. 축성 10년이 지난 1636년 병조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한다. 도성 밖 궁궐인 행궁이 함께 있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영화로도 제작됐다. 인조 14년 12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30일까지 조선군은 이곳에서 청의 공격을 막아내다 실패하고, 인조는 결국 청 태종 누르하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조선 역사상 최대의 치욕이었다. 영조 때 개축한 수어장대에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그날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다.
12.4km에 이르는 성벽 산책로는 가파른 구간이 많지 않아 가볍게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다. 보통 5개 탐방로를 기본으로 돌아본다. 1·2·4코스는 산성로터리, 3·5코스는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에서 출발한다.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1코스(3.8km)로 1시간 20분쯤 걸린다. 산성로터리에서 출발해 북문 서문 수어장대 영춘정 남문을 지나 회귀한다. 연주봉 옹성 입구에서 서문까지 전망이 일품이다. 한강의 도도한 물줄기와 잠실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충북 청주 상당산성은 조선 시대 군사 요충지로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충청 지방을 지켜준 보루였다. 성 이름은 백제 시대 청주목을 이르던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유신의 셋째 아들 원정이 쌓았다는 기록(삼국사기)과 궁예가 쌓았다는 기록(상당산성고금사적기), 임진왜란 때 충청도병마절도사 원균이 쌓았다는 기록(선조실록)이 있다. 조선 숙종 42년(1716) 석성으로 쌓기 시작해 영조 때 지금 모습이 완성됐다.
성곽을 따라 ‘산성 일주 코스’를 걸으면 성문 3개와 암문 2개, 치성과 수구 3곳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다. 약 4km, 1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저수지에서 출발해 남문을 지나 서남암문과 서문, 동북암문, 동문, 동장대를 거쳐 다시 저수지로 내려온다. 정상부에 해당하는 남문~서문 구간 전망이 뛰어나다. 우암산, 좌구산 등 일대 산야와 미호평야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가림성은 백제 성곽 가운데 유일하게 축성 연대가 알려진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백제 동성왕 23년(501) 위사좌평 백가가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위사좌평은 왕을 호위하고 왕궁을 지키는 관직이다. 성흥산 정상부에 쌓은 석성은 둘레 약 1,500m, 높이 3~4m에 이른다.
주차장에서 울창한 숲길을 따라 200m쯤 오르면 충혼사다. 백제 멸망 후 가림성에서 활동한 백제부흥군을 기리는 사당이다. 충혼사를 지나면 암벽 사이로 길이 나 있다. 다소 가파른 계단을 조금 오르면 남문 터다. 일명 가림성 ‘사랑나무’로 불리는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진 명소다. 아래로 살짝 처졌다가 다시 치켜든 가지 아래에서 사진을 찍어 반전해 옆으로 붙이면 완벽한 하트모양이 그려진다. 해 질 무렵 실루엣으로 찍으면 특히 아름답다. 사랑나무 정면으로 금강이 유장하게 흘러가는 모습과 충남 논산 서천, 전북 익산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이곳에서 성곽길을 한 바퀴 돌면 약 1.2km, 넉넉 잡아 40분 정도 걸린다.
부산 금정산성은 산꼭대기에서 동남·서남쪽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했다. 입구에 성 둘레를 의미하는 ‘18845M’ 포토존이 있다. 국내 산성 중 가장 큰 규모다. 조선 숙종 때인 1701~1703년 쌓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1667년 보수를 건의했다는 기록도 있어 그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산성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가장 매력적인 코스는 동문에서 출발해 3망루와 4망루로 이어지는 길이다. 완만한 숲길과 가파른 암벽이 어우러진 코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동문은 해발 415m로 꽤 높지만 203번 버스정류장에서 도보 5~10분 거리다. 3망루는 해발 550m 암벽에 절묘하게 얹혀 눈길을 잡는다. 해발 620m 주 능선에 있는 4망루에서는 북쪽으로 의상봉, 서쪽으로 낙동강, 동쪽으로 금정구 일대가 시원하게 보인다. 등산을 즐긴다면 가장 높은 고당봉 금샘까지 갈 것을 추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물빛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표현돼 있다. 실제 샘이 아니라 바위 항아리에 물이 고인 모양새인데, 안개가 잦아 웬만해선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금정산 이름도 이 샘에서 유래했다.